사랑합시다!!! (방명록 2)

별로 인기가 없어서 그런지 이제 겨우 방명록 100 채웠습니다. 채웠으니까 어쨌든 밀어두고, 새 방명록 겁니다. 이건 몇 년만에 다시 100 채울까. 뭐, 안달하는 성질은 아니니까. 심지어는 절대 채워지지 않아도 그럭저럭...혼자 끄적이며 놀고 있는데 뭐.



TIP:
(Egloos 카테고리를 보면, 전체 목록을 볼 수 없이 몽땅 본문으로 뜬다. 또 카테고리에 new 서비스 따위 없다. 그래서 처음에 남의 얼음집 가면 막막했었다. 더구나 카테고리 아래에는 무조건 '다음' 뿐이니 열심히 누르면서 확인할 밖에. 그러다 내가 참 미련하다는 생각을 했다. 남들은 분명히 이런 미련 떨지 않을 것이여...)
내가 찾아낸 결론은, '이전 블로그'를 누르는 것.
'달력'도 있겠지만, 나는 '달력'을 안 걸었으니까...어쨌든 '달력'이나 '이번 블로그'의 그 달치를 누르면 쉽게 해결되는 것을 여태 생각 못 했다니.

by 暗雲姬 | 2009/12/31 23:59 | 개인자료 | 트랙백 | 덧글(28)

당연한 것에 감동을 하다니

오늘도 또 어느 구간 길에 도색을 하는지 아침인데도 서울쪽으로 가는 차선이 어마어마하게 막힌다. 그 반대 차선에 서 있던 나는, 신호등에서마저 멎기 아깝다는 듯이 꼬리를 물고 틈을 안 주는 행렬 사이로 들어서 좌회전을 하려는 참인데 그게 쉽지 않았다. 드디어 겨우 구멍 하나 뚫려 앞차가 움직이고 나도 잽싸게 붙었다. 그런데 갑자기 앞에 가던 트럭이 우뚝 멈춰서는 게 아닌가. 목을 쭉 뽑아 1.5톤 트럭 너머를 보자니 119 구급차가 삐뽀거리며 앞으로 나서는 중이었다. 구급차는 서울방향이었고, 어휴, 저 차들 헤치고 어찌 가려나, 내가 한숨이 나왔지만 어쨌든 내 앞차가 멈춰준 덕분에 일단 조금은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구급차가 건널목 지난 후 앞차가 움직이고...그 뒤를 따라 부웅 액세레이터를 밟으면서 갑자기 울컥, 눈물이 핑 돌았다. 빌어먹을. 구급차에게 몇 초 양보한 게 뭐 대단한 거라고 울컥거리나. 하지만 어쩌냐. 아주 당연한 그것을 워낙 보기 드물기 때문에 그만 감동을 먹어 버린 것을. 이미 저만치 달려가는 그 트럭 기사분, 안전운행 하소서.

by 暗雲姬 | 2008/08/21 11:00 | DRy | 트랙백 | 덧글(1)

아깝다?

그저 약간 얼굴만 아는 여자. 오가다 만나면 인사나 슬쩍 흘리고 마는 사람이지만, 가끔 다른 이를 통해서 들은 그 여자 제일 큰 특징은 극성스러운 건강염려증. 하얀 백미를 무엇보다 좋아하면서 10년 넘게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노라고, 까슬거리는 온갖 잡곡 넣은 밥만 해먹는다는, 그래서 외식도 남의 집 밥도 먹지 않는다는 조잘조잘 수다를 문구점에서 뒤통수로 언뜻 들은 적도 있었다.

내가 그 여자를 만난 곳은 이 지역에 와서 처음 사귄 동갑네 친구가 하는 문구점. 나처럼 아무 것도 살 것 없어도 놀러오는 여자가 제법 여럿이고, 누구나 잘 품어줄 줄 아는 친구는 그런 이들 수다에 열심히 고개를 끄덕여주는 이다. 그 친구가 몇 년 미국에 가 있는 동안 여동생 둘이 반 나절씩 문구점을 맡고 있는데, 친구 소식도 들을 겸 가끔 거기 들르면 다른 이들도 드문드문 마주친다. 그리고 그 여자도 몇 차례 만났다. 정작 친구가 있을 때는 나나 여자나 친구한테 얘기를 하느라 서로 인사 외에는 나눈 일이 별로 없지만, 친구 없으니 되려 반색을 하며 안부를 묻게 된다. 몇 마디 인삿말 오가고 나면 여자는 버릇인 듯 건강, 음식에 대한 이야기나 경험담, 의문 따위를 줄줄 읊어댄다. 나는 웃는 표정 짓고 들어줄 수밖에 없다. 내 친구 참 대단해, 이걸 허구한날 들어줬을 거 아냐.

어제도 여자를 만났다. 친구 동생 붙들고 얘기를 하다가 내가 들어서니 활짝 웃었다. 내가 잠시 스카치테이프를 고르고 공책 몇 권 살펴보고 있는데 동생보다는 내가 상대로서 낫다 싶었는지 내게 이것저것 말을 걸었다. 어제 화두는 유기농과 무농약이었다. 어디서 유기농 커피가 어쩌고, 다른 데서 유기농 두부가 어쩌고...그 집착으로 거머쥔 상식에 나는 차마 한 마디도 거들 것이 없어 듣기만 했다, 언제나처럼. 그런데...그 모든 유기농 농산물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예전엔 거저 먹다시피한 걸 비싼 돈 주고 사먹자니 아깝다네. 땅 관리 해가면서 화학비료 안 써 적은 소출을 감수하려면 그 가격이야 어쩔 수 없는 것을 상식이 풍부한 사람이 왜 모르시나. 별 수 있나요, 직접 텃밭농사라도 지어야지요. 웃는 내 앞에 정색을 했다. 텃밭농사로는 택도 없을 걸요. 쌀도 내야지, 잡곡도 심어야지, 야채는 물론이고, 이제는 토종닭도 먹이고 소도 키워야 할지 몰라요. 농담하는 걸까, 정말 진지한 걸까. 모두들 아무개 엄마처럼 생각해서 실천으로 옮긴다면 아마 다시 전국민의 대부분이 농사꾼으로 돌아가야 할 거고, 그러면 정말 비싼 돈 주고 유기농산물이니 무농약 채소니 하는 것들 안 사먹을 날이 올테죠. 약간 빈정거림을 담아 한 말이지만 여자는 연신 고개를 끄덕끄덕, 정말 농사꾼으로 거듭날 생각이 손톱만치라도 있는 걸까 의구심이 일 정도였다.

- 생협 아시죠? 생협에서 구입하세요. 거기는 믿을 수 있고 값도 싸잖아요. 
계속 비싸다 타령을 하길래 이 한 마디로 맺음을 하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인터넷에서 생협도 찾아봤어요. 정말 싸더군요. 하지만 출자금인지 내야 하고 회비도 다달이 내야 하고, 그래서 이용할 수가 없어요.
-듣자하니 먹거리는 죄다 유기농이나 무농약만 쓰시는 모양인데, 그러면 생협 이용하는 적립금이 회비 내고도 남겠는데요 뭐.
-어휴, 그래도 어떻게 다달이 이만 원씩이나 내요?
-회원 아니라도 구입할 수 있는 걸로 아는데요. 약간 금액이 올라가기는 하겠지만.
-20프로나 더 내야 한대요. 그러니 그걸 어떡해 해요.
뭐야, 그러면 공으로 먹겠다는 거야?

몇 번 뒤통수로 들은 걸로만, 홍삼을 몇십 만 원 주었느니, 붕어즙을 냈느니...어마어마하게 돈을 써대는 걸로 알고 있는데 월 이만 원 회비가 아까워서 생협을 이용하지 못 하겠다는 것은 무슨 심보일까. 농민들이 자기한테 거저 갖다 바치기를 바라는 건 아닐텐데. 그렇다면 여자는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유기농 무농약 먹거리를 도대체 어디에서 얼마 주고 사는 것일까. 그렇게 만족할만 한 데가 있다면 나야말로 알고 싶네. 하지만 어디서 사먹느냐고 차마 묻지를 못 했다. 황당한 답을 듣고 잘 알지도 못 하는 사람을 속으로 웃어댈까 나 스스로에 대한 경계심이 일었기 때문이다. 그냥 듣고 흘리자, 그이가 어떻게 살든 나와 무슨 상관인가...이런 주문 한 마디 살짝 걸고는, 그러면 마트에서 풀무원 제품 찾아야지요 뭐, 싱긋 웃고 문구점을 떠났다.

큰돈 겁 안 내고, 꼭 필요한 것 아니라도 큰돈을 덜컥 들이고, 그러나 푼돈에는 째째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이 자꾸 늘어난다. 어디보다 어디가 몇십 원 싸대, 이런 정보를 아는 것을 자랑거리로 알고, 그렇게 싼 것 찾아 삼만 리 하는 스스로가 알뜰하다고 안심하고 싶어하는 풍조가 아닌가 싶다. 에이, 그깟 돈 몇천 원 내게는 아무 것도 아니어서 음료수 한두 번 안 사먹으면 되는 거지만, 그것마저 귀히 쓸 사람도 있을텐데...이러고서 다른 것보다 가격이 높아도 군말 안 하는 나는, 아무래도 제대로 된 살림꾼은 아닌 모양이다.

by 暗雲姬 | 2008/08/21 10:26 | 삶.. | 트랙백 | 덧글(2)

정시까지 가자

남보다 늦게 입시미술이라는 것에 끼어든 딸애로서는 수채화 테크닉이 많이 떨어졌을 거였다. 처음 시작했을 때야 남보다 떨어졌어도 신기함이 앞서 그러려니 하고 재미있어 하긴 했는데, 갈수록 서서히 조여오는 압박도 만만치 않았겠지. 게다가 시작한지 반 년만에 고3이 되어 만난 입시반 담당 선생님은 어지간히 무뚝뚝하고 융통성 없는 경상도 사내. 사사건건 타박이었으니 애는 죽을 맛이었을 거다. 자기는 재능이 없는 것 아닌가, 괜히 미술을 하겠다고 했나...별별 생각을 다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성실한 딸애는 입 꾹 다물고 무작정 매달리기만 했는데...그게 두어 달 지나니까 슬슬 표가 나더란 말이지. 선생님이 은근슬쩍 칭찬도 하고, 점수 매기면 거의 1,2등이고, 외부인사가 채점하는 모의평가에서도 줄곧 1,2등이고...비로소 스스로 대견하고 뿌듯해진 모양이다. 선생님이 아예 붙들고 앉아서 보아주는 일 없이 간단한 설명만으로 본인이 고쳐놓을 수 있는 경지(?)에 다다르고 보니 선생님과의 관계도 좋아져 슬슬 농담도 건네 그 무뚝뚝한 선생님을 웃기기도 한다며, 학원생활에 재미가 붙는 듯했다.

이제 수시지원을 하는 시기. 선생님과 상담을 하여 모여대, 모모여대에 원서를 쓰라는 말을 들었다나. 여대 말고는 없냐니까 공학은 특기자전형 수시밖에 없다네. 그건 거기 실기대회에 입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특기자전형 아니고도 지원할 수 있는 데는 딱 하나 있는데 그 이름도 높은 H대. 아직 거기 갈 실력도 안 되는데다가 설령 실기실력이 되어도 학과성적이 못 미치니까 꿈도 못 꿀 것이고. 아이나 나나 여대는 절대 안 간다고 생각하는지라 결국 수시지원은 할 데가 없다는 소리.

중고등학교 경우에도 마찬가지지만, 더군다나 대학에서 여자와 남자를 갈라 자연스러운 것을 막는다는 건 절대 반대하는 입장이다. 더구나 생활현장이 아닌 교육현장에서 말이다. 공부를 하건 작업을 하건 양성이 서로 보완해야 할 것들이 많다. 아이디어를 주고받고 서로 도우며 작업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더욱 한쪽 성만으로는 발전이 없다고 믿는다. 내가 다닐 때는 남자가 환쟁이 하려는 이가 드물어 그랬는지 S대나 H대 빼고는 설령 남녀공학이라도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내 아이디어는 과 여자친구들이 별로 탐탁치 않아 했고, 더구나 힘을 많이 써야 한다면 지레 뒷걸음 치며 나를 도울 의지가 없어 보였다. H대에 다니는 남자친구나 선후배들한테 얘기를 하면 그들은 눈을 빛내며 듣고 격려를 했는데 말이다. 과 친구들 작품은 모두 아기자기, 세밀하고 예쁘고 귀엽기만 해서 내 취향과는 도통 맞지를 않아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딸이 굳이 여대를 선택한다면 내 의견을 우기며 말려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내 딸도 여대라면 펄쩍 뛴다. 고등학교 들어와 1,2학년 때 처음으로 여자만 있는 반이 되었었는데 거기에 적응하지 못 해서 무척 괴로운 학교생활을 했었다. 학교, 친구, 선생님이라면 그렇게 좋아하던 애가 처음으로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고, 울고 불고 밥도 못 먹고 하여 무려 10키로 이상 본의 아닌 다이어트 성공을 한 셈이 되고 말았다. 고등학교 생활 마무리하는 3학년이 되어서야 겨우 남녀합반이 되어 지금은 웃으며 학교에 다닌다. 지금도 딸애의 절친한 친구는 대부분이 남자들이다. 여자친구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것도 남녀가 같이 어울리는 상황에서 만들어진 여자친구이지, 여자만 모여 있는 데서는 아무 친구도 만들지 못 했다. 그런데다가 웹에서 6년을 알고 지내던 예고 나온 선배가 올초에 여대에 가더니, 절대 절대 여대에는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있다.

학교 선생님한테도 학원 선생님한테도 여대를 안 가겠다니 다들 의아해 한다.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때냐고, 아무 데나 붙으면 되지 무슨 소리냐고 펄쩍들 뛴다. 하지만 딸애는 여대를 가느니 차라리 재수를 하거나 대학에 안 가겠다고 선언을 했다. 아비조차도 딸과 나를 이해하지 못 하겠다고 한다. 어떻게 한결같이 대학이라면 어디든 감지덕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되려 내가 이해가 안 가는데 말이다. 어쨌든 아이가 학원 선생님한테 수시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하자 선생님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내 딸을 다시 불러 또 상담을 하면서 학과성적으로 고심하더니 이대에 지원하라고 했단다. 경상도 억양으로 "해라!" 하고 흉내를 내면서 딸이 웃었다. 그래도 여대 중에서 제일 높은 레벨이라서 듣고 보니 기분은 좋은 모양이었다. 진지하게 거듭 따로 상담을 하신 것에 대고 차마 싫다고는 못 하겠고, 그냥 "네" 하고 고개를 숙였다면서, "어차피 원서를 쓰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만큼 인정하고 믿어주신다 생각하니까 기분은 좋네요" 했다. 정말 쓸 생각 없냐니까 "만약 재수없어(?) 붙으면 꼼짝없이 재수를 해야 하잖아요" 하고 웃었다. 학원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다는 것을 알면 학교 선생님들한테 들들 볶일 것이다. 시골학교에서 이대생 나오면 횡재한 셈 치니까 기회라고 밀어붙일 게 아니겠는가. 학교나 선생 입장에서야 학생은 학교 홍보용 이상이 될 수 없는 현실이다. 또한 합격한다는 보장도 없는데, 어디어디에 시험 쳤었다는 과시로 자위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둘 다 쉿, 아비한테도 절대 아무 말 안 하기로 단단히 약속을 했다.

정시까지 앞으로 넉 달 남았다. 그 동안 부지런히 연습하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실력이 될 것이니까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꾸준하자고 했다. 성적이 좋으면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날 것이라고 얘기를 해주긴 했지만 그 선택은 본인 몫일 뿐, 자기 스스로 깨닫지 못 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렇다고 아이를 다그치는 어미대열에 합류할 수는 없었다. 지금 아이는 미리 공부해두지 못 한 것을 살짝 후회하는 듯도 하지만, 대신 다른 아이들이 갖지 못 한 자유롭고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지 않았는가. 그것은 대학입시와는 무관하게 아이 인생 어느 부분에선가, 아이 성격 어디쯤엔가 많은 도움이 되리라. 물론, 내가 공부 공부 하면서 못 살게 굴지 않았다고 원망하는 기색은 없다. 인생에서 기회는 대학입학시험 딱 한 번만이 아니다. 또한 모두들 성공했다고 증명해주는 삶만이 제대로 된 삶도 아니며, 그러니까 더군다나 그 성공만이 유일한 기회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성실하게 노력하고 즐겁게 산다면 수십 년 남은 생애를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 목표는 행복한 삶에 두는 것이라고 가르쳐왔고 아이도 그렇게 믿고 있다. 자, 행복할 수 있는 많은 기회 중 하나를 위하여, 힘내자, 딸.

by 暗雲姬 | 2008/08/20 15:01 | 삶.. | 트랙백 | 덧글(8)

죽을 자유

이거, 전에 썼었는지 안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정말 하도 무지막지하게 써대서 어떤 걸 썼는지 가물가물하다).

최근에 전해 듣기로, 목숨이 경각에 달린 어느 여자(나보다 어리다)가 아직 학생인 아이들 걱정으로 병상에서 잠도 못 이룬다 했다. 남의 일이 아니구나 하고 나도 잠이 든 딸애 얼굴을 쓰다듬었는데, 가끔씩 생각하곤 하던 친구 말이 오늘 아침에 또 문득 떠올랐다.

동창 가운데 독신 간호사가 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친해서 친구라 했지만 그 후 스무 해 넘도록 소식을 몰랐었으니 이제는 그냥 동창으로만 격이 달라진 이인데, 다른 동창 통해서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야 비로소 미혼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 친구들은 미혼이 제법 된다. 자주 만나는 친구들이라 그들 일상이나 삶이 하나도 별스럽지 않았던 데에 비해서 이 친구가 독신이라는 데는 왠지 낯이 설었다.
누구네 집에서 편하게 만났던지라 죄다들 뒹굴뒹굴 구르면서 허물없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낄낄거렸다. 이제는 코 닦아줘야 할만큼 어린 자식이 없어 다들 자유스러워 보였다. 동창이라면 으례 그렇듯이 그 자리에 없는 다른 동창 얘기, 선생님 얘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서야 최근 얘기들을 두런거렸는데, 우리 나이면 또한 삶에 지치고 만사 귀찮은 심정이기도 쉽다. 사람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자식에 대해서 권태기를 겪는다고 할 수 있을 게다. 그러니 푸념이 터져나올 밖에. 흉을 보고 한탄하고 분개하고...한참 돌아가며 그런 얘기들을 하다가 한 친구가 문득 그 독신자에게 툭 내뱉었다.
-너는 좋겠다.
-뭐가?
-적어도 죽을 자유가 있잖아.
-맞어, 맞어, 쟤는 자식이니 남편이니 걸거치는 게 없으니 이제라도 죽고 싶다 생각이 들면 그냥 죽어도 미안하고 걱정되는 것 없을 거야.
-와, 죽을 자유라...그거 멋지겠는데?
이렇게 너도 나도 입을 맞추고 있는데 그 친구는 골똘한 표정이 되었다. 이윽고 눈을 든 그이는, 우리를 둘러보며 한 마디 툭 뱉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죽고 싶은 적이 없었어.
순간 쥐죽은 듯이 고요해지던 그 공기는 뭐였을까. 우리는 누구도 차마 입을 떼지 못 하고 그이를 멀뚱멀뚱 바라보았고, 그이 역시 영문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둘러보았다. 마침내 한 친구가 끙 몸을 일으키며 눈을 떨궜다.
-젠장. 결혼을 하지 않으면, 서방이나 자식이나 시집식구 없으면 죽고 싶은 생각이 생기지도 않는다는 거잖아.

by 暗雲姬 | 2008/08/20 10:30 | 삶..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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