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08일
고문하지 마시오!
지역 공연장 에 엮다.
사실 2시간 내내(본래 공연은 1시간 반이었지만 앵콜이 계속되어서) 음악보다는 과거에 취해 있었다.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 처음 본 것이 국민학교 때였고, 그 후 두 번인가 더 봤었다. 처음에 갔을 때 나와 비슷한 또래 사내아이들의 미성에 홀딱 반해서 내가 그들만큼 잘 부르지 못 한다는 게 속상했었던 기억이 난다. 몇 년 후 봤을 때는 동생 같은 그들이었고, 나중에 봤을 때는 조카 같은 그들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식 같은, 그것도 아마 두었다면 한참 아래 막내 같은 아이들을 보면서 세월흐름을 절감했고, 곁에서 연신 천사 같다고 감탄을 하는 딸애를 돌아보며 싱긋 웃는 마음이 쓸쓸하였다. 물론 소란스러운 주위 때문에 자주 주의가 산만해져 울컥증도 나면서 말이다.
매번 실망하고 노엽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하면서 한편으로는 설마 했는데 역시나 였다. 애초 기대를 할 걸 해야지. 아트홀 주차장이 모자라 아예 아트홀을 빙 둘러 세워놓은 차들에 기세가 눌렸다. 어마어마하게 많이들 왔구먼. 로비에 들어서니 아비규환, 무시무시한 꼬마악마들(?)이 대기소파에 올라가 펄쩍펄쩍 덤블링을 하고,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아이들 세워놓고 사진 찍은 어른들, 장식눈사람 위치가 마음에 안 드는지 자기들 멋대로 돌리고 옮기고 하면서 사진에 환장한 민족답게 다른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머리를 틀어올리고 화장까지 한 자그마한 아이들은 벌써 거기에 질려서 울쌍을 하고서 그만찍자고 죽는 소리를 했다.
입장할 때부터 시끄러웠다. 하얀 할머니가 아장거리는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려 하자 직원이 막았다. 그러면 저 꼬마를 어디다 두느냐고 할머니는 언성을 높였다. 이번에는 도리우찌 쓴 할아버지가 돌 갓지난 아기를 안고 들어가려다가 제지당하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노인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젊은 멋장이 엄마들이 아이 두셋씩 달고 들어가려는데 한 아이나 겨우 연령이 맞을까, 대부분 다섯 살도 안 되어 보이는 아기들이었다. 입구를 지키는 직원들은 땀을 흘렸다. 아무리 안 된다 해도 표를 흔들어대며 막무가내다. 음, 표를 팔 때 나이 확인을 하는 방법은 없을까. 하긴 인터넷 예매를 무슨 수로 막을까. 웹페이지에 분명히 나이제한을 두었건만 그런 것 읽어볼 사람들도 아니고, 읽는다 해도 지킬 마음은 애저녁에 없는 게다. 직원들과 실랑이를 하는 그들을 뒤로 하고 얼른 들어가 자리를 찾았다.
조금 서둘러 입장해 자리에 앉았는데 도무지 안정이 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래부터 위까지 계단을 질주하는 아이들, 부모들도 아는 이들과 떠드느라 통로가 북새통이었다. 아마 이 지역 피아노 학원들은 단체로 움직였는지도 모르겠다. "선생님" 어쩌고 하면서 자기 아이들의 실력 따위 묻는 소리들이 간간히 들렸으니까. 그나마 어느 장애인 단체에서 온 듯, 휠체어 몇 개와 다운증후군 외양을 보이는 아이들이 있어 보기에 흐뭇했는데, 정상인 꼬마들이 뛰어다니며 홱 쳐서 휠체어가 팽그르르 돌고 계단을 흘러내려갈 위기에 처한 것을 몇 번이나 보았다. 기겁을 하며 그들을 챙기는 동행들 뿐, 다른 누구도 그런 것 상관하지 않는 것 같았다. "세상에! 다 들어왔네요." 딸애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조금 아까 그 할아버지며 할머니며 다들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내 옆자리에 젊은 중위와 대위가 앉았는데, 소근소근 자기들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이 연신 시계를 보며 눈쌀을 찌푸렸다. "이렇게 멋진 문화공간 만들어놓았으면 최소한 문화예절이라도 가르치든지 원...!" 나도 같은 생각이다.
10분이 지났고, 기다리다가는 도저히 안 되겠는지 드디어 손전화기 끄고 사진 찍지 말라는 당부방송이 나오고 장내에 불이 꺼졌다. 합창단 소년들이 차례로 걸어나오는데도 아직 자리는 정리되지 않아 어수선했다. 처음 곡은 '아리랑'이었다. 내 앞에 화장까지 하고 앉은 뚱뚱한 열 살 정도 여자아이는 저도 안다고 자랑하고 싶은지 큰소리로 따라 부르는 것이 아닌가. 아이고, 추임새가 흥이 되는 마당놀이도 아니고 이게 웬 일? 어째 조짐부터 좋지가 않다.
두번 째 곡부터는 그들의 레파토리, 주로 성가곡이었다. 그 두번 째 곡부터 벌써 여기저기 용틀임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몸을 비꼬기 시작한 것. 초등학교 수업시간은 40분이다. 그런데 그 40분 얌전히 앉아 있기도 힘든 그 나이 집중력이며, 더구나 요즘 아이들은 워낙 자유롭게 자란 탓으로 그것은 고역이라고 한다. 수업을 진행시키는 선생님들도 힘들다는데. 그런데 그런 아이들이 교실도 아니고, 자식들 일이라면 흐뭇한 낯으로 오냐오냐 하는 부모라는 든든한 빽을 두었고, 그보다 더 어린 아이들도 숱했으니 오죽하랴. 알지도 못 하는 음악, 알아듣지도 못 하는 말에 아이들 반응은 즉각으로 터지기 시작했다. 내 앞자리에는 남매를 가운데 몰아넣고 양쪽에 아빠 엄마가 포진을 하고 있었는데, 이 아빠라는 양반이 쉴새없이 전화를 받는 게다. 물론 진동이라 소리는 들리지 않고 소근거리니까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걸핏하면 켜지는 불빛 때문에 눈이 시어 못 견디겠다. 아이들끼리 떠드는 소리로 짐작하여 남자애는 초등1학년이요 누나인 듯한 애는 두 학년 쯤 위겠다. 마치 물 밖에 내놓은 생선처럼 쉬지 않고 엎어졌다 뒤집어졌다, 팔을 들어 허공에 흔들어대며 누워서 다리까지 팔걸이에 놓았다 내렸다 자전거타기 하다...쥐어박고 싶었다. 한 마디 했다가는 자칫 부모랑 싸움이 날테니 그럴 수도 없고.
억지로 집중을 하면서 보느라 애썼지만 눈은 자꾸 사방으로 돌아갔다. 딸애도 고개를 자꾸 두리번거렸고, 옆자리 군인들도 연신 쯔쯔 혀를 차댔다. 때가 겨울이니 감기가 극성이고, 여기저기서 쉬지 않고 터져나오는 기침 때문에도 미칠 지경이었다. 아무리 자연현상이라지만 그렇게 기침 심한 사람이 도대체 공연장에 왜 온단 말인가. 맨앞 무대 바로 앞에 앉은 꼬마는 쉬지않고 의자 위에서 엉덩이 덤블링을 하고, 벌떡 일어나 무대에 매달려 발짓 하는 아이도 있었다. 세 곡도 안 지났는데 벌써 잠이 들어 팔걸이에 다리 올리고 자는 아이들, 공연 처음부터 아예 무릎으로 달랑 올라앉아 뒤만 바라보며 동무들 찾다가 손을 흔들고 법석을 떠는 애도 있었다. 한 꼬마가(첫줄) 벌떡 일어나더니 통로를 달음질쳐 거의 뒤쪽 좌석까지 이동을 하는 바람에 놀란 직원이 허리 구부리고 뛰어와 아이를 강제로 끌어냈다. 아이는 안 나가겠다고 버티고, 그 엄마인 듯 첫줄에 앉았던 여자가 뛰쳐일어나 문에서 직원과 실랑이를 하는 꼴이라니. 가족관람 작정을 한 사람들도 많았다. 대개 엄마 아빠 가운데 아이를 끼어앉혔는데 아이는 일어났다 앉았다, 엄마는 간혹 신경질도 내고, 아빠들은 여기저기서 끄덕거리며 졸거나 아예 편하게 기대서 정신없이 자장가 감상 중이었다. 어떤 여자가 허리 구부리고 올라와 내 딸 옆자리 여자와 뭐라고 속닥거리더니 자리를 바꾸는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올라온 여자가 소근소근소근소근...로비로 나가든지. 여기저기서 손전화기가 자꾸 번쩍거렸다. 꼴에 사진 찍어 현장증거사진 만드는 모양이다. 합창단 찍지 말고 몸 비꼬는 자기 아이들이나 찍든지 원. 나는 비교적 앞자리에 앉아 있었으므로 보이는 데가 한정되어 있는데, 내 뒤로 길게 뻗어 있는 다른 자리라고 해서 다를 리는 없었겠지. 마치 넓은 웅덩이 하나 보고 있는 듯, 그 안에서 올챙이가 쉴새없이 꼬무락거리는 듯 여겨저 눈앞이 어지러웠다.
약간 뒤쪽에 중학생 정도 여자아이들이 서넛 있었다. 이 애들은, 곡 하나 끝날 때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휘파람 날리고...동방신기 구경온 건가. 돌아서서 인사하고 박수 끝나기 기다리는 지휘자는, 그 여학생들 소동이 끝나야 비로소 다시 돌아서 다음 곡으로 들어가곤 했다. 정말 웃겼던 건, 어떤 아이가 앞좌석 발로 걷어차고 의자 위에서 펄쩍펄쩍 뛰다가도 모자라 팔걸이에 앉았다가 의자로 미끌어져내리는 놀이를 계속하고 있었던 거였다. 워낙 70프로 이상이 난리굿을 치니까 직원들도 난감했던지 웬만해서는 움직이지 않았는데 거기로는 쫓아갔다. 공연은 진행 중이었다. 그런데 내 자리에서 제법 떨어진 그 자리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날카로운 목소리."애가 심심해서 그러는데 어쩌란 거예요?" 와, 졌다. 심심해 하는 왕자님을 심심할 공연에 왜 모셔오셨냐구우. 허탈하게 돌아가는 직원을 보면서, 공연장 직원한테는 더 막강한 권력을 주어야 하는데 하고 생각했다.
쉬는 시간이 되자 일제히 튕겨 일어나는 그들을 보면서, 제발 나가서 다시는 들어오지 말거라, 그렇게 쉴새없이 주문을 외웠다. 하지만 본전생각에 치열한 엄마들이 어디 그럴 사람들인가. 징징 우는 아이들을 질질 끌고 다시 입성하시는 그 당당함이라니. 공연장 측에서는 비로소 어마 뜨거라! 했던 모양인지 방송이 길었다. 손전화와 카메라는 똑같은 소리였지만, 기침을 참아달라느니, 공연 도중에 돌아다니지 말라느니, 앞좌석을 발로 차지 말라느니...에고, 소용없는 짓이여. 그거, 일러줘야 지키는가. 꼬마들끼리 단체관람도 아니고 죄다 우아한 엄마들과 왔는데도 그 모양인데 까짓 몇 분 방송으로 택도 없는 일이지. 애당초 들여보내지를 말았어야지.
2부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많았다. 저희들 아는 거 나왔다고 손뼉치고 따라부르고 또 다른 난리가 일어났다. 도대체 감상을 할 수가 없다. 공연 중간중간 제일 어려보이는 단원 둘이 번갈아 가며 마이크 앞에 서서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 다 못 외웠는지 종이를 꺼내 읽었다. 그게 귀엽다며 엄마들은 웃고 박수를 보냈지만 꼬마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무대 쪽은 볼 생각도 없이 계속 징징거렸다. 마지막 곡 '고향의 봄'을 부르자 또 다같이 따라하더니 죽어라 박수를 쳤다. 앵콜, 앵콜...! 그래서 그들은 잇달아 다섯 곡인가를 더 불렀는데 다들 한국 곡이었다. 자기들이 아는 노래니 좋았나, 서툰 한국말이 재미있었나, 곡이 끝날 때마다 건물이 떠나갈 듯 손뼉을 쳐대며 환성을 질러 그렇게 많은 곡을 더 부른 것이다. 내 보기에는, 곡 감상보다는 재미 내지는 아예 뽕을 뽑겠다는 것 같았다.
맨마지막 곡은 '마법의 성'이었다. 동요나 가곡은 모르는 꼬마들도 가요는 아는지라 모처럼 바짝 집중을 하는 것 같았다. 내 앞 예의 그 꼬마는 여전히 앞좌석을 발로 퉁퉁 차가며 그 노래를 따라불렀다. 아들이 노래를 부르는 것에 그만 감동을 한 아빠는 연신 올렸다 내렸다 내 눈을 부시게 하던 손전화기를 비로소 끄고 아들 머리를 쓸고 껴안고 쪽쪽 빨고 대견해 죽겠다고 난리를 쳤다. 이건 무슨 코메디를 보러 온 것도 아니고 원.
아장아장 애기들은 그렇다 치고, 그래도 초등학생 정도가 더 많았다. 두 시간 공연이 그 아이들에게 지겹기는 할 터이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아이들이 바로 그 또래다. 제 나라 떠나 먼 곳 떠돌며 그렇게 공연을 하는 것이, 많은 면에서 자랑이요 보람이기도 하겠지만 역시 아이는 아이 아니겠는가. 그들이라고 힘들지 않고 지겹지 않고 놀고 싶지 않겠는가. 방문하는 나라 동요나 민요나 가곡을 따로 연습해야 하는 것까지 더했는데. 무대 위에서 제 몫을 하고 있는 그 아이들 아래서 편하게 의자에 앉아 귀기울여 들어줄 수 있는 소양과 예의를 갖춘 이들만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공연장은 공연장이지 연습장도 아니고 놀이터나 과시장은 더더욱 아니다. 그 차이를 누가 누구에게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
로비에서 사인회를 한다고 했다. 합창단원들이 준비를 하는 동안 길게 줄을 늘어섰다. "어머, 아무개 엄마" 이러면서 아는 사람 옆에 섰다가 아예 슬그머니 끼어드는 사람들 때문에 내 딸은 자꾸 뒤로 밀려났다. 그걸 보다 보다 화가 나서, "자리 지켜 제시간에 하지 못 할 거면 그냥 나가자"고 했더니 애가 기겁을 했다. 그리고는 자기 자리 지키느라고 안간힘을 썼다. 그래봤자 앞쪽으로 자꾸 끼어드는 걸 무슨 수로 막으랴. 아이들은 엄마 손을 잡고 다리를 버팅기며 울었다. "나는 그딴 거 안 받아도 돼. 가자, 엄마아~" 그러나 그 금쪽같은 내 새끼들을 그 때는 쥐어박아가면서 기다리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아이들은 쉬야 하겠다고 울고, 졸립다고 울고...이건 완전히 고문이다.
다섯 명의 합창단원들이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 명에게만 받고 뒷사람들을 위해 얼른 자리를 내달라고 직원들이 통사정을 하고 다녀도, 우리나라 아줌마들이 어디 그러냐, 그 뻣뻣하고 튼튼한 몸으로 버티고 있다. 다섯 명 모두에게 차례차례 받아야겠단다. 어떤 엄마는 자기 아이를 끌어당기며 합창단원 옆에 세워 사진을 찍어야겠단다. 공연 내내 제일 어린 단원이 마치 천사 같다며 눈을 떼지 못 하던 딸애가 마침내 그 아이 사인을 받고 허둥지둥 도망쳐나왔다. 앞에 있는 엄마들은 버티고 나가지 않고 뒤에 서 있는 엄마들이 밀어대니 몇 차례 넘어질 듯하다가 겨우 받은 사인을 들고 단원이 앉은 의자 옆으로 양해를 구하며 빠져나온 것이다. 우리는 지옥에서 빠져나오는 심정으로 서둘러 발을 재촉했다.
아트홀 마당 나무들은 반짝이 성탄불을 입고 있었다. 싸한 밤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와 살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려는 이들이 드문드문 있기는 했지만 아직 대부분 로비에서 복닥이를 치고 있는 중이라 한가했다. 한숨이 나왔다. 영화나 공연을 보고 돌아나올 때는 그 감상에 젖어 조용하게 되새기게 마련이다. 늘 딸아이와 다니는 나는 도란도란 할 얘기도 많았다. 그 아이가 모르는 곡에 대해서는 설명도 하고, 그 작곡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그 곡이 씌어지던 시대적 배경이랄까 어떤 에피소드라도 들려주게 마련이다. 그런데 아트홀에서 나오면 그런 것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어떻게든 빨리 벗어나려는 마음 뿐이다.
"품바는 더하겠지요?" 뚜벅 말하는 뜻을 얼른 짐작했다. 다음 주에 품바 예매를 했다. 그 공연의 특성상 아마 더한 소란이 있겠지. 그러나 오늘처럼 조용히 감상만 해야 하는 것 아니니 그래도 참아줄 만은 하지 않을까, 이런 짐작을 하자니 참 처량맞다. "다시는 여기로 공연 보러 오지 말자" 이렇게 대답을 하고 말았다. 구름 벗겨지는 겨울하늘에 별 몇 개 나타나기 시작했고, CD 한 장 샀으니 집에 가 다시 들어보며 천천히 이야기해야겠다 한숨 쉬었다.
사실 2시간 내내(본래 공연은 1시간 반이었지만 앵콜이 계속되어서) 음악보다는 과거에 취해 있었다.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 처음 본 것이 국민학교 때였고, 그 후 두 번인가 더 봤었다. 처음에 갔을 때 나와 비슷한 또래 사내아이들의 미성에 홀딱 반해서 내가 그들만큼 잘 부르지 못 한다는 게 속상했었던 기억이 난다. 몇 년 후 봤을 때는 동생 같은 그들이었고, 나중에 봤을 때는 조카 같은 그들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식 같은, 그것도 아마 두었다면 한참 아래 막내 같은 아이들을 보면서 세월흐름을 절감했고, 곁에서 연신 천사 같다고 감탄을 하는 딸애를 돌아보며 싱긋 웃는 마음이 쓸쓸하였다. 물론 소란스러운 주위 때문에 자주 주의가 산만해져 울컥증도 나면서 말이다.
매번 실망하고 노엽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하면서 한편으로는 설마 했는데 역시나 였다. 애초 기대를 할 걸 해야지. 아트홀 주차장이 모자라 아예 아트홀을 빙 둘러 세워놓은 차들에 기세가 눌렸다. 어마어마하게 많이들 왔구먼. 로비에 들어서니 아비규환, 무시무시한 꼬마악마들(?)이 대기소파에 올라가 펄쩍펄쩍 덤블링을 하고,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아이들 세워놓고 사진 찍은 어른들, 장식눈사람 위치가 마음에 안 드는지 자기들 멋대로 돌리고 옮기고 하면서 사진에 환장한 민족답게 다른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머리를 틀어올리고 화장까지 한 자그마한 아이들은 벌써 거기에 질려서 울쌍을 하고서 그만찍자고 죽는 소리를 했다.
입장할 때부터 시끄러웠다. 하얀 할머니가 아장거리는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려 하자 직원이 막았다. 그러면 저 꼬마를 어디다 두느냐고 할머니는 언성을 높였다. 이번에는 도리우찌 쓴 할아버지가 돌 갓지난 아기를 안고 들어가려다가 제지당하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노인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젊은 멋장이 엄마들이 아이 두셋씩 달고 들어가려는데 한 아이나 겨우 연령이 맞을까, 대부분 다섯 살도 안 되어 보이는 아기들이었다. 입구를 지키는 직원들은 땀을 흘렸다. 아무리 안 된다 해도 표를 흔들어대며 막무가내다. 음, 표를 팔 때 나이 확인을 하는 방법은 없을까. 하긴 인터넷 예매를 무슨 수로 막을까. 웹페이지에 분명히 나이제한을 두었건만 그런 것 읽어볼 사람들도 아니고, 읽는다 해도 지킬 마음은 애저녁에 없는 게다. 직원들과 실랑이를 하는 그들을 뒤로 하고 얼른 들어가 자리를 찾았다.
조금 서둘러 입장해 자리에 앉았는데 도무지 안정이 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래부터 위까지 계단을 질주하는 아이들, 부모들도 아는 이들과 떠드느라 통로가 북새통이었다. 아마 이 지역 피아노 학원들은 단체로 움직였는지도 모르겠다. "선생님" 어쩌고 하면서 자기 아이들의 실력 따위 묻는 소리들이 간간히 들렸으니까. 그나마 어느 장애인 단체에서 온 듯, 휠체어 몇 개와 다운증후군 외양을 보이는 아이들이 있어 보기에 흐뭇했는데, 정상인 꼬마들이 뛰어다니며 홱 쳐서 휠체어가 팽그르르 돌고 계단을 흘러내려갈 위기에 처한 것을 몇 번이나 보았다. 기겁을 하며 그들을 챙기는 동행들 뿐, 다른 누구도 그런 것 상관하지 않는 것 같았다. "세상에! 다 들어왔네요." 딸애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조금 아까 그 할아버지며 할머니며 다들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내 옆자리에 젊은 중위와 대위가 앉았는데, 소근소근 자기들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이 연신 시계를 보며 눈쌀을 찌푸렸다. "이렇게 멋진 문화공간 만들어놓았으면 최소한 문화예절이라도 가르치든지 원...!" 나도 같은 생각이다.
10분이 지났고, 기다리다가는 도저히 안 되겠는지 드디어 손전화기 끄고 사진 찍지 말라는 당부방송이 나오고 장내에 불이 꺼졌다. 합창단 소년들이 차례로 걸어나오는데도 아직 자리는 정리되지 않아 어수선했다. 처음 곡은 '아리랑'이었다. 내 앞에 화장까지 하고 앉은 뚱뚱한 열 살 정도 여자아이는 저도 안다고 자랑하고 싶은지 큰소리로 따라 부르는 것이 아닌가. 아이고, 추임새가 흥이 되는 마당놀이도 아니고 이게 웬 일? 어째 조짐부터 좋지가 않다.
두번 째 곡부터는 그들의 레파토리, 주로 성가곡이었다. 그 두번 째 곡부터 벌써 여기저기 용틀임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몸을 비꼬기 시작한 것. 초등학교 수업시간은 40분이다. 그런데 그 40분 얌전히 앉아 있기도 힘든 그 나이 집중력이며, 더구나 요즘 아이들은 워낙 자유롭게 자란 탓으로 그것은 고역이라고 한다. 수업을 진행시키는 선생님들도 힘들다는데. 그런데 그런 아이들이 교실도 아니고, 자식들 일이라면 흐뭇한 낯으로 오냐오냐 하는 부모라는 든든한 빽을 두었고, 그보다 더 어린 아이들도 숱했으니 오죽하랴. 알지도 못 하는 음악, 알아듣지도 못 하는 말에 아이들 반응은 즉각으로 터지기 시작했다. 내 앞자리에는 남매를 가운데 몰아넣고 양쪽에 아빠 엄마가 포진을 하고 있었는데, 이 아빠라는 양반이 쉴새없이 전화를 받는 게다. 물론 진동이라 소리는 들리지 않고 소근거리니까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걸핏하면 켜지는 불빛 때문에 눈이 시어 못 견디겠다. 아이들끼리 떠드는 소리로 짐작하여 남자애는 초등1학년이요 누나인 듯한 애는 두 학년 쯤 위겠다. 마치 물 밖에 내놓은 생선처럼 쉬지 않고 엎어졌다 뒤집어졌다, 팔을 들어 허공에 흔들어대며 누워서 다리까지 팔걸이에 놓았다 내렸다 자전거타기 하다...쥐어박고 싶었다. 한 마디 했다가는 자칫 부모랑 싸움이 날테니 그럴 수도 없고.
억지로 집중을 하면서 보느라 애썼지만 눈은 자꾸 사방으로 돌아갔다. 딸애도 고개를 자꾸 두리번거렸고, 옆자리 군인들도 연신 쯔쯔 혀를 차댔다. 때가 겨울이니 감기가 극성이고, 여기저기서 쉬지 않고 터져나오는 기침 때문에도 미칠 지경이었다. 아무리 자연현상이라지만 그렇게 기침 심한 사람이 도대체 공연장에 왜 온단 말인가. 맨앞 무대 바로 앞에 앉은 꼬마는 쉬지않고 의자 위에서 엉덩이 덤블링을 하고, 벌떡 일어나 무대에 매달려 발짓 하는 아이도 있었다. 세 곡도 안 지났는데 벌써 잠이 들어 팔걸이에 다리 올리고 자는 아이들, 공연 처음부터 아예 무릎으로 달랑 올라앉아 뒤만 바라보며 동무들 찾다가 손을 흔들고 법석을 떠는 애도 있었다. 한 꼬마가(첫줄) 벌떡 일어나더니 통로를 달음질쳐 거의 뒤쪽 좌석까지 이동을 하는 바람에 놀란 직원이 허리 구부리고 뛰어와 아이를 강제로 끌어냈다. 아이는 안 나가겠다고 버티고, 그 엄마인 듯 첫줄에 앉았던 여자가 뛰쳐일어나 문에서 직원과 실랑이를 하는 꼴이라니. 가족관람 작정을 한 사람들도 많았다. 대개 엄마 아빠 가운데 아이를 끼어앉혔는데 아이는 일어났다 앉았다, 엄마는 간혹 신경질도 내고, 아빠들은 여기저기서 끄덕거리며 졸거나 아예 편하게 기대서 정신없이 자장가 감상 중이었다. 어떤 여자가 허리 구부리고 올라와 내 딸 옆자리 여자와 뭐라고 속닥거리더니 자리를 바꾸는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올라온 여자가 소근소근소근소근...로비로 나가든지. 여기저기서 손전화기가 자꾸 번쩍거렸다. 꼴에 사진 찍어 현장증거사진 만드는 모양이다. 합창단 찍지 말고 몸 비꼬는 자기 아이들이나 찍든지 원. 나는 비교적 앞자리에 앉아 있었으므로 보이는 데가 한정되어 있는데, 내 뒤로 길게 뻗어 있는 다른 자리라고 해서 다를 리는 없었겠지. 마치 넓은 웅덩이 하나 보고 있는 듯, 그 안에서 올챙이가 쉴새없이 꼬무락거리는 듯 여겨저 눈앞이 어지러웠다.
약간 뒤쪽에 중학생 정도 여자아이들이 서넛 있었다. 이 애들은, 곡 하나 끝날 때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휘파람 날리고...동방신기 구경온 건가. 돌아서서 인사하고 박수 끝나기 기다리는 지휘자는, 그 여학생들 소동이 끝나야 비로소 다시 돌아서 다음 곡으로 들어가곤 했다. 정말 웃겼던 건, 어떤 아이가 앞좌석 발로 걷어차고 의자 위에서 펄쩍펄쩍 뛰다가도 모자라 팔걸이에 앉았다가 의자로 미끌어져내리는 놀이를 계속하고 있었던 거였다. 워낙 70프로 이상이 난리굿을 치니까 직원들도 난감했던지 웬만해서는 움직이지 않았는데 거기로는 쫓아갔다. 공연은 진행 중이었다. 그런데 내 자리에서 제법 떨어진 그 자리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날카로운 목소리."애가 심심해서 그러는데 어쩌란 거예요?" 와, 졌다. 심심해 하는 왕자님을 심심할 공연에 왜 모셔오셨냐구우. 허탈하게 돌아가는 직원을 보면서, 공연장 직원한테는 더 막강한 권력을 주어야 하는데 하고 생각했다.
쉬는 시간이 되자 일제히 튕겨 일어나는 그들을 보면서, 제발 나가서 다시는 들어오지 말거라, 그렇게 쉴새없이 주문을 외웠다. 하지만 본전생각에 치열한 엄마들이 어디 그럴 사람들인가. 징징 우는 아이들을 질질 끌고 다시 입성하시는 그 당당함이라니. 공연장 측에서는 비로소 어마 뜨거라! 했던 모양인지 방송이 길었다. 손전화와 카메라는 똑같은 소리였지만, 기침을 참아달라느니, 공연 도중에 돌아다니지 말라느니, 앞좌석을 발로 차지 말라느니...에고, 소용없는 짓이여. 그거, 일러줘야 지키는가. 꼬마들끼리 단체관람도 아니고 죄다 우아한 엄마들과 왔는데도 그 모양인데 까짓 몇 분 방송으로 택도 없는 일이지. 애당초 들여보내지를 말았어야지.
2부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많았다. 저희들 아는 거 나왔다고 손뼉치고 따라부르고 또 다른 난리가 일어났다. 도대체 감상을 할 수가 없다. 공연 중간중간 제일 어려보이는 단원 둘이 번갈아 가며 마이크 앞에 서서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 다 못 외웠는지 종이를 꺼내 읽었다. 그게 귀엽다며 엄마들은 웃고 박수를 보냈지만 꼬마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무대 쪽은 볼 생각도 없이 계속 징징거렸다. 마지막 곡 '고향의 봄'을 부르자 또 다같이 따라하더니 죽어라 박수를 쳤다. 앵콜, 앵콜...! 그래서 그들은 잇달아 다섯 곡인가를 더 불렀는데 다들 한국 곡이었다. 자기들이 아는 노래니 좋았나, 서툰 한국말이 재미있었나, 곡이 끝날 때마다 건물이 떠나갈 듯 손뼉을 쳐대며 환성을 질러 그렇게 많은 곡을 더 부른 것이다. 내 보기에는, 곡 감상보다는 재미 내지는 아예 뽕을 뽑겠다는 것 같았다.
맨마지막 곡은 '마법의 성'이었다. 동요나 가곡은 모르는 꼬마들도 가요는 아는지라 모처럼 바짝 집중을 하는 것 같았다. 내 앞 예의 그 꼬마는 여전히 앞좌석을 발로 퉁퉁 차가며 그 노래를 따라불렀다. 아들이 노래를 부르는 것에 그만 감동을 한 아빠는 연신 올렸다 내렸다 내 눈을 부시게 하던 손전화기를 비로소 끄고 아들 머리를 쓸고 껴안고 쪽쪽 빨고 대견해 죽겠다고 난리를 쳤다. 이건 무슨 코메디를 보러 온 것도 아니고 원.
아장아장 애기들은 그렇다 치고, 그래도 초등학생 정도가 더 많았다. 두 시간 공연이 그 아이들에게 지겹기는 할 터이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아이들이 바로 그 또래다. 제 나라 떠나 먼 곳 떠돌며 그렇게 공연을 하는 것이, 많은 면에서 자랑이요 보람이기도 하겠지만 역시 아이는 아이 아니겠는가. 그들이라고 힘들지 않고 지겹지 않고 놀고 싶지 않겠는가. 방문하는 나라 동요나 민요나 가곡을 따로 연습해야 하는 것까지 더했는데. 무대 위에서 제 몫을 하고 있는 그 아이들 아래서 편하게 의자에 앉아 귀기울여 들어줄 수 있는 소양과 예의를 갖춘 이들만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공연장은 공연장이지 연습장도 아니고 놀이터나 과시장은 더더욱 아니다. 그 차이를 누가 누구에게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
로비에서 사인회를 한다고 했다. 합창단원들이 준비를 하는 동안 길게 줄을 늘어섰다. "어머, 아무개 엄마" 이러면서 아는 사람 옆에 섰다가 아예 슬그머니 끼어드는 사람들 때문에 내 딸은 자꾸 뒤로 밀려났다. 그걸 보다 보다 화가 나서, "자리 지켜 제시간에 하지 못 할 거면 그냥 나가자"고 했더니 애가 기겁을 했다. 그리고는 자기 자리 지키느라고 안간힘을 썼다. 그래봤자 앞쪽으로 자꾸 끼어드는 걸 무슨 수로 막으랴. 아이들은 엄마 손을 잡고 다리를 버팅기며 울었다. "나는 그딴 거 안 받아도 돼. 가자, 엄마아~" 그러나 그 금쪽같은 내 새끼들을 그 때는 쥐어박아가면서 기다리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아이들은 쉬야 하겠다고 울고, 졸립다고 울고...이건 완전히 고문이다.
다섯 명의 합창단원들이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 명에게만 받고 뒷사람들을 위해 얼른 자리를 내달라고 직원들이 통사정을 하고 다녀도, 우리나라 아줌마들이 어디 그러냐, 그 뻣뻣하고 튼튼한 몸으로 버티고 있다. 다섯 명 모두에게 차례차례 받아야겠단다. 어떤 엄마는 자기 아이를 끌어당기며 합창단원 옆에 세워 사진을 찍어야겠단다. 공연 내내 제일 어린 단원이 마치 천사 같다며 눈을 떼지 못 하던 딸애가 마침내 그 아이 사인을 받고 허둥지둥 도망쳐나왔다. 앞에 있는 엄마들은 버티고 나가지 않고 뒤에 서 있는 엄마들이 밀어대니 몇 차례 넘어질 듯하다가 겨우 받은 사인을 들고 단원이 앉은 의자 옆으로 양해를 구하며 빠져나온 것이다. 우리는 지옥에서 빠져나오는 심정으로 서둘러 발을 재촉했다.
아트홀 마당 나무들은 반짝이 성탄불을 입고 있었다. 싸한 밤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와 살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려는 이들이 드문드문 있기는 했지만 아직 대부분 로비에서 복닥이를 치고 있는 중이라 한가했다. 한숨이 나왔다. 영화나 공연을 보고 돌아나올 때는 그 감상에 젖어 조용하게 되새기게 마련이다. 늘 딸아이와 다니는 나는 도란도란 할 얘기도 많았다. 그 아이가 모르는 곡에 대해서는 설명도 하고, 그 작곡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그 곡이 씌어지던 시대적 배경이랄까 어떤 에피소드라도 들려주게 마련이다. 그런데 아트홀에서 나오면 그런 것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어떻게든 빨리 벗어나려는 마음 뿐이다.
"품바는 더하겠지요?" 뚜벅 말하는 뜻을 얼른 짐작했다. 다음 주에 품바 예매를 했다. 그 공연의 특성상 아마 더한 소란이 있겠지. 그러나 오늘처럼 조용히 감상만 해야 하는 것 아니니 그래도 참아줄 만은 하지 않을까, 이런 짐작을 하자니 참 처량맞다. "다시는 여기로 공연 보러 오지 말자" 이렇게 대답을 하고 말았다. 구름 벗겨지는 겨울하늘에 별 몇 개 나타나기 시작했고, CD 한 장 샀으니 집에 가 다시 들어보며 천천히 이야기해야겠다 한숨 쉬었다.
# by | 2007/12/08 01:44 | 삶..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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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 정말 아이랑 공연 가는 것은 주위사람들에게 민폐군요. (호두까기인형만 빼곤 ).
따라부르기까지 하다니! 세상에..
제가 백조의 호수 공연 (발레를 한건 아니고 통역이었어요) 할때는 , 난감한 일이 별로 없었던게, 당연한, 것이 아니고 아주아주 운이 좋았던 거군요.
아이들이 오는 공연은 크리스마스의 호두까기 인형뿐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어쩌면 극장탓이었을까요.
후우.
아이가 크면, 다시 공연일을 할 생각인데, 정말, 난감난감난감하겠어요.
그리고, 아이가 지루해하고 가만히 못 있는 건 당연한 거지요.
그 나이 아이가 안 그러면 그게 이상한 거 아녜요?(에구, 내 딸은 그 '이상한 애'였답니다.ㅠㅠ)
문제는, 아이들 성장특성 따위 안중에도 없는 엄마들의 해괴한 교육열이지요.
외국은...적어도 서구쪽은 이런 문제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비공개 / 아아, 좋은 연극공연 하나 새로 올랐던데...정말 무서워서 못 가겠어요.
낼모레, 예매해놓은 '품바'를 끝으로 이제 여기는 안 갈 겁니다(혹 50년 후쯤이면 몰라도. ㅎㅎ 그러면 내가 몇 살일까, 살아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