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찾기

노래방은...아마 평생 열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갔던가, 아니 조금 더 갔던가. 혼자 가수가 된 듯이 뻐기고 싶어하는 그 문화를 썩 좋아하지는 않으니까 자진해서 앞장서는 것은 고사하고 떼거리에 밀려 들어서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그래도 어쨌든 요즘은 모였다 하면 술 몇 잔 곁들인 저녁 먹고 으례 노래방을 들러서야 끝을 내는 추세이기 때문에, 대개 노래방 가는 길에 슬쩍 빠지고는 하지만 누군가에게 단단히 팔꿈치 쥐어서 어쩔 수 없이 그 '끝'까지 동행을 해야 하는 적도 가끔 있는 것이다. 거기에서 남들 노래하는 동안 열심히 목록책을 뒤지는 그 모습들을 아무리 해도 이쁘게 보아지지 않는 내가 문제적 인간인가.

친구들이 나를 밉다 했다. 언제나 눈 가득 웃음 담고 있는 게 못마땅하다 했다. 그렇게 웃고만 있어서 자신감 넘쳐 보이는 것이 보는 이로 하여금 약이 오른다 했다. 그렇다고 해실해실 웃음을 흘리고 다닌 것도 아니건만 그들은 왜 나를 늘 웃는다 했을까. 실제로는 개똥철학에 젖어 뒷골목 뒤지고 다니며 달랑 혼자 앉아 스스로 술잔 채운 게 대부분이건만 친구들이 볼 때 내 모습은 파안대소하거나 수다와 더불어 까르르 터치지는 않아도 아무튼 늘 웃는 모습이었던가 보다.
가만히 생각하면, 웃음보다는 흥얼흥얼 노래를 놓지 않았던 게 내 모습이었다. 어쩌면 그렇게 노래를 하느라 웃는 모습으로 비춰보인 건 아니었을까. 대중가요가 내 느낌으로 다가와 줄줄 눈물로 적시지 않는 바에야 어쨌든 노래라는 것은 즐거움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랬다. 늘 노래를 불렀다. 사람 많은 데서는 흥얼흥얼, 작업을 하면서도 쭝얼쭝얼, 사람 없는 골목에서는 목청 높여 노래를 했다. 집에서도 책 읽는 시간 아니면 피아노를 치거나 기타를 퉁기며 노래를 해대 식구들이 잠 좀 자자 하소연을 할 정도였다. 그런데...그게 언제까지였더라.
어디서건 가락 섞어 소리를 내는 법 없는 이즈음의 나를 보면 아무도 내가 성악과 지망생이었다는 것을 생각조차 못 할 것이다. 유난히 고음의 소프라노로, 오로지 일주일에 하나씩 새 노래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신앙심 따위 없이도 교회 성가대를 쭐레쭐레 나갔고 곡 중 독창은 항상 내 몫이었다. 고등학교 입학해 첫 음악시간, 높게 솟아오르는 내 목소리를 골라내곤 음악선생님이 픽 웃은 후로 학교 행사 때마다 그의 부름으로 늦은 밤까지 음악실에 남아 신이 나서 노래연습을 했었다. 어찌어찌 우스꽝스러운 사건이 터져 음악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말았지만, 그래서 대학 때는 기타와 포크송으로만 살았다. 처음 대학가요제라는 것 생겼을 때 친구들은 나를 내보내지 못 해 안달이었는데, 내 즐거움을 남에게 선사하는 게 영 못마땅해 절대불가를 외쳤었다. 연극을 할 때 우리 선생님은 나를 뮤지컬 배우로 키우고 싶다고 하셨다. 내가 노래를 하지 않는 일은 절대 없을 줄 알았다, 그들이나 나 자신이나.

내가 목을 닫아 버린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어느 날 문득 더는 노래를 하지 않는 나를 발견했을 뿐이다. 내 젊은 날 아무리 음험한 얼굴로 개똥철학에 심취해 있었어도 역시 삶은 살아볼 만 한 거라고 희망에 넘쳐 있었나 보다. 그러기에 노래를 할 수 있었음을 깨닫는다. 노래를 함으로써 살 만 했던 게 아니라 살 만 했었기에 노래를 했더란 말이다. 그런데 살아가는 게 버거워지면서 노래를 잃은 게다.
마침 그즈음이었다, 후두염을 앓은 게. 정말 무시무시하게 거의 일곱 달을 앓았다. 의사는 소리를 내지 말고 살라고 했지만 어린 딸을 키우는 여자가 어찌 입을 닫고 살 수 있겠는가. 무리를 하면서 동요를 불러줘야 했고 오래오래 소리내어 책을 읽어줘야 했다. 그러다 보면 목이 아프고 콱 막혀서 쉬고 갈라졌다. 어찌어찌 후두염에서 벗어나자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음을 알았다. 낭랑했던 목소리는 해괴하게 바뀌었고, 말만 조금 오래 해도 금세 가라앉았다. 밤 새워 목이 터져라 노래를 해도 멀쩡했던, 매일 연습하고 매일 공연해도 아무렇지도 않던 목소리는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아쉽지 않았다. 이미 더 이상 노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래를 잊었다는 것을 깨닫고나서 잠시 놀라기는 했지만, 이내 목소리가 변하여 노래를 할 수 없다는 핑계를 내밀었다. 노래 하고 싶지 않은 자리에서 억지로 노래를 해야 하는 고역에서 벗어나기에 적절했다. 물론 정말 노래를 할 수 없었다. 높은 음이고 낮은 음이고 내지 못 해 겨우 한 옥타브 가운데서 웅얼거리고 말아야 하는 터에 무슨 노래란 말인가.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부르는 건 그렇게 되었다 치더라도 듣는 것조차 끊어 버린 것이다. 음악에 귀 기울일 만치 여유가 없었다. 내 생활 어디에도 음악이 끼어들 여지가 없이 꽉 막혀 있었다.

다시는 노래 따위에는 미련이 생기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최근 두어 해 사이에 노래를 할 수 없다는 것이 비참해져 버렸다. 여유 없기는 매한가지지만 이제 아이와 소리 맞춰 노래를 해보고 싶어졌다. 그런데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아이가 부르는 것 듣다가 틀린 부분을 고쳐주고 싶어도 시범을 보일 수 없다. 친구들과 노래방에 갈 때 아이를 데리고 간 적이 몇 차례 된다. 음역이 좁은 노래 몇 불러본 적 있다. 내가 부르는 노래를 얼마나 들어보지 않았으면 그것만으로도 아이는 어머니가 노래 잘 한다 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다. 노래를 잘 하고 못 하고가 아니라, 항상 노래를 입에 달고 사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억지로 되지는 않는 모양이다. 의식을 하지 않으면 절대 웅얼거리지도 않는다. 그것이 나를 참 비참하게 만든다.
식구 다 나가고 혼자 있는 때, 일부러 한두 곡 부른다. 어쩌다 광고 한 소절이라도 들으면 종일 그게 입에 배 자꾸 흥얼거리게 되듯 그렇게 내게 배 버리기를 바라며 열심히 부른다. 쉽지 않다. 너무 멀리 떠나온 모양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다시 노래를 부르며 살고 싶다. 제대로 된 소리가 안 나와도 좋다. 속으로라도 늘 노래를 하고 싶고, 그러는 나를 느끼고 싶고, 남의 노래에 관심을 가지고 귀 기울이고 싶다. 새로운 노래 들으면 그걸 익히고 싶어하는 마음을 갖고 싶다. 그렇게 살고 싶다.

by 暗雲姬 | 2007/12/26 12:02 | 삶.. | 트랙백 | 핑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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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7/12/26 23:0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暗雲姬 at 2007/12/27 00:41
비공개 / 아, 이번에는 제대로 시간 맞춰 간 모양이네요.
정말 다행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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