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만 그렇구나

녀석이 제대로 걷지를 않아 걱정했다. 처음에는 아장아장 걷는 게 귀엽다 생각했는데 그게 차츰 비척비척으로 비쳐져서 걷는 걸 볼 때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했다. 근육이 다 빠져나가는가, 기운이 없어지는가, 모든 게 서서히 소멸되어 가는가...이러면서 아버지의 마지막 한 해를 자꾸 떠올렸다. 아버지가 그렇게 사그러들지 않았던가. 누구나 가는 길이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게 쉽지많은 않았다. 이제 녀석도 그 수순을 밟아가는구나...자꾸 눈물이 돌았다.

어제 동호회 아우네 갔을 때, 화장실에서 나와 보니 녀석이 화장실 앞에 서 있었다. 내 기척을 듣고 졸졸 따라와 기다린 모양이었다. 눈이 안 보이면서부터 절대 혼자 있지 않으려는 녀석 때문에 집에서든 바깥에서든 항상 녀석을 달고 다닌다. 웬만한 데는 안고 다니고, 움직여도 위험하지 않다 싶으면 내려놓는데 그렇게 졸졸 내 뒤나 딸애 뒤를 따르는 것이다. 내가 소파로 왔을 때 녀석은 여전히 화장실 앞에 있었다. 아마 내가 나와서 돌아온 걸 몰랐던 모양이다. 이름을 부르니 그제서야 서서히 얼굴을 돌리고 다시 몸을 돌려서 아장아장인지 비척비척인지 아무튼 내게로 오기 시작했다. 나는 녀석이 발 아래 오면 안아올릴 태세로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 녀석은 나를 지나쳐가는 게 아닌가. 내가 앉아 있는 쪽을 가늠하지 못 한 것이다. 그렇게 늘 맞닥뜨리는 사소한 일 하나하나를 녀석만큼이나 적응하지 못 하는 나는 또 코가 찡해왔다. 내 앞을 스쳐지나간 녀석의 코가 자그마한 찻상에 닿았다. 한 발 뒤로 물러나서 목을 빼고 콩콩 냄새를 맡더니 손을 뻗어 살짝 쳐보았다. 두어 번 그렇게 확인을 해서 그게 찻상이라는 거, 그리고 높이를 재봤는지 살짝 상으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상 위에 선 채 다시 손을 뻗어 기역자로 꺾어진 소파 저쪽을 톡톡 확인을 하고는 또 날렵하게 뛰어올라서는...아장아장 내게로 찾아왔다.

아우네 녀석들 세 마리는 절대로 그렇게 뛰어오르지 못 한다. 아니 우리 동호회 어떤 놈들도 그렇게 뛰어오르지 못 한다. 그건 우리 꼬실이만이 할 수 있는 가볍고 잰 몸놀림이다. 열여섯 해 동안 보아온, 누구나 감탄을 하는, 고양이처럼 가볍고 소리조차 내지 않고 높은 데를 뛰어 오르내리는 우리 막둥이 날렵함. 나는 그만 감격을 해서 녀석을 꼭 부등켜안았다. 아아, 기운이 달린 게 아니구나, 근육이 빠진 게 아니구나, 그냥 보이지 않아서 겁 먹고 조심하는 것 뿐이었구나. 안도감이 몰려왔다. 보이지 않아 그렇지 다른 데는 아직 멀쩡하다고. 우리 아직은 한참 더 행복하게 함께일 수 있을 거야.

by 暗雲姬 | 2008/10/24 22:51 | DRy | 트랙백 | 덧글(2)

트랙백 주소 : http://emghim.egloos.com/tb/4691323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앙녀 at 2008/10/25 22:07
글읽으면서 왜 이렇게 가슴이 아려오는지 모르겠어요.
뚱땡이 나리 98년12월9일생 몸이 예전 같지 않아요.
잘올라오던 쇼파랑 침대도 올려달라고 칭얼거리고.
산책나가도 예전처럼 활기차가 놀지 않고 조금 심하게 놀면 밤에 끙끙거리고.
이래저래 가슴아픈 밤이네요. 꼬실아 아프지만 말아라.
Commented by 暗雲姬 at 2008/10/26 09:06
우리에게 말로써 표현하지 못 하는, 그러나 스스로 처리하기보다는 우리에게 맡겨야만 하는 그들의 수긋한 운명 때문에...그렇게 그들의 늙어감과 쇠약해짐이 가슴 아픈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