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1월 27일
생활 속 꼬실이
우리는 늘 그렇게 불러왔다. 생활 속 꼬실이.
무심코 현관문을 열려다 손이 부자유스러운 걸 깨달으면 나도 모르게 꼬실이를 안고 있는 걸 그제서야 안다. 분명히 소파에서 자고 있는 걸 보고 TV 보다가 무슨 소리 나서 나온 건데 어느 새 소파에서 내려와 내 무릎 위에 있었나 보다.
부엌으로 걸어가면서 저절로 아래를 보고 피하려고 하는 나를 깨닫는다. 녀석은 거실에서 동그랗게 자고 있는데도 나는 그 애가 졸졸졸 내 발치를 따라온다고 여겼나 보다.
아비가 집에 있어 같이 두고 딸이랑만 장 보러 나오고서도 주차 마치지마자 내리면서 손을 뻗던 딸은 두리번거린다. 꼬실이 어디 갔니. 아차, 집에 있구나.
고기 볶겠다고 꺼내고서 우선 한 줌 먼저 볶고나서야 나머지에 간을 한다. 양념 안 된 것을 꼬실이한테 먹여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박혀 있는 것이다.
사람들과 만났다가 고기 먹으러 가자고 일어서면서 어디로? 하고 의견을 낼 때 저절로 오리구이, 쇠고기집을 꼽는다. 앨러지 있는 녀석 때문에 돼지고기나 닭고기는 먹을 수 없다는 게 우리 식구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당연히 정육점에서도 돼지고기를 사지 않은지 일여덟 해는 되었겠다. 그 때부터 꼬실이 앨러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꼬실이가 슬개골 수술을 하고 나서 침대 다리를 몽땅 잘라 버렸다. 높은 데 오르내리는 실내견들한테 슬개골이 버텨내지 못 한다고 해서다. 다리를 잘라낼 수 없는 의자나 소파를 위해서 강아지용 계단을 마련했다.
행거 커버를 새로 만들겠다고 천을 둘러보려 웹쇼핑을 하면서 문득 꼬실이한테 어울리는 방석카바나 옷도 같이 만들 수 있는 무늬를 고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전화기를 새로 사면 시범으로 찍는 폰카메라 첫모델은 자연스럽게 꼬실이다. 나나 딸이나.
군고구마 집어들면 우선 갈라내 후후 불고 있는 나를 깨닫는다. 꼬실이는 뜨거운 거 못 먹으니까.
공연 관람하자고 의견을 냈다가도 우선 그 시간에 친정식구들 중 하나라도 집에 있는 날을 고려하게 된다. 두어 시간이라도 꼬실이를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꼬실이가 우리와 떨어져서도 많이 불안해 하지 않고 지낼 수 있는 집은 외가와 동호회 아우네 둘 뿐이다. 물론 밥도 물도 먹지 않지만 일단 콜콜 자기는 한다. 전화해 보아 시간 맞지 않으면 관람을 포기한다.
애를 안고 식당을 들어서다가, 개는 안 되는데요, 하는 종업원 말에는 두말않고 돌아서 나온다. 어쩌구 저쩌구 협상할 필요도 없다. 언젠가 동창모임에 갔는데 개는 들어갈 수 없단다. 내가 조금 늦게 갔기 때문에 이미 동무들은 죄다 앉아 먹고 있었던지라 옮기자고 할 수도 없었고, 당시에 아직 초등학생이던 딸이 차에 꼬실이와 함께 남았다. 나도 말거라 하지 않았고 딸도 전혀 불만이 없었다. 가끔 나와서 딸을 대신 들여보내며 아줌마 아저씨들 사이에서 밥 먹거라 고기 먹거라 자리를 바꿨을 뿐이다. 동무들도 우리 모녀를 전혀 이상하게 보지 않고 내 딸을 챙겨주었다.
꼬실이 생일이 어린이날이라 딸애는 한 번도 어린이날을 챙겨받지 못 했다. 그렇게 해줄 생각도 없었거니와 그런 요구를 받은 적도 없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려면 당연히 꼬실이 것도 마련해야 했다. 무엇이 갖고 싶다고 딸내미는 제 것은 물론 꼬실이를 대신해서 기도도 했다.
시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도 혼자 외가에 맡겨져 불안해 하지 않도록 딸애도 같이 가 있었다.
딸애는 일부러 의식하지 않으면 자기가 외동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학년 초에 자기소개를 할 때도, 우리 식구는 아버지 어머니 나 그리고 남동생 모두 넷, 이라고 했다.
......
이번 설을 지내면서 열일곱 살이 된 꼬실이와 그렇게 열여섯 해를 살았다.
개가 있는 집에 놀러갔다가 내 딸이 대접 받은 과자를 집어든다든지 했을 때 그 집 개가 쫓아오면 딸은 신기하다 했다. 장난감 공을 들고 던지려면 빤히 쳐다보다 손에서 놓기 무섭게 뛰어가는 것도 신기하다 했다. 너는 이게 보이니? 넌 내가 뭐 먹는지 알어? 꼬실이가 백내장으로 앞을 못 본지 반 년 지났다. 처음에는 답답하고 가슴이 아팠는데 어느 새 그게 우리 생활이 되었다. 화장실에 데리고 가고, 밥그릇 앞으로 데려가고, 물그릇을 밀어주어 살짝 코에 닿게 해 위치를 깨닫게 해주고...그런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러니까 다른 집 개들이 우리를 보고 있다가 행여 얻어먹을까 알짱거리거나 일어서려면 저희가 먼저 눈치채고 앞서 현관으로 뛰어나가는 둥 하는 행동이 낯설게 된 것이다. 확실히 생활 속에 꼬실이예요. 개가 앞을 본다는 게 신기하고 믿어지지가 않는 거 있죠.
무심코 현관문을 열려다 손이 부자유스러운 걸 깨달으면 나도 모르게 꼬실이를 안고 있는 걸 그제서야 안다. 분명히 소파에서 자고 있는 걸 보고 TV 보다가 무슨 소리 나서 나온 건데 어느 새 소파에서 내려와 내 무릎 위에 있었나 보다.
부엌으로 걸어가면서 저절로 아래를 보고 피하려고 하는 나를 깨닫는다. 녀석은 거실에서 동그랗게 자고 있는데도 나는 그 애가 졸졸졸 내 발치를 따라온다고 여겼나 보다.
아비가 집에 있어 같이 두고 딸이랑만 장 보러 나오고서도 주차 마치지마자 내리면서 손을 뻗던 딸은 두리번거린다. 꼬실이 어디 갔니. 아차, 집에 있구나.
고기 볶겠다고 꺼내고서 우선 한 줌 먼저 볶고나서야 나머지에 간을 한다. 양념 안 된 것을 꼬실이한테 먹여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박혀 있는 것이다.
사람들과 만났다가 고기 먹으러 가자고 일어서면서 어디로? 하고 의견을 낼 때 저절로 오리구이, 쇠고기집을 꼽는다. 앨러지 있는 녀석 때문에 돼지고기나 닭고기는 먹을 수 없다는 게 우리 식구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당연히 정육점에서도 돼지고기를 사지 않은지 일여덟 해는 되었겠다. 그 때부터 꼬실이 앨러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꼬실이가 슬개골 수술을 하고 나서 침대 다리를 몽땅 잘라 버렸다. 높은 데 오르내리는 실내견들한테 슬개골이 버텨내지 못 한다고 해서다. 다리를 잘라낼 수 없는 의자나 소파를 위해서 강아지용 계단을 마련했다.
행거 커버를 새로 만들겠다고 천을 둘러보려 웹쇼핑을 하면서 문득 꼬실이한테 어울리는 방석카바나 옷도 같이 만들 수 있는 무늬를 고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전화기를 새로 사면 시범으로 찍는 폰카메라 첫모델은 자연스럽게 꼬실이다. 나나 딸이나.
군고구마 집어들면 우선 갈라내 후후 불고 있는 나를 깨닫는다. 꼬실이는 뜨거운 거 못 먹으니까.
공연 관람하자고 의견을 냈다가도 우선 그 시간에 친정식구들 중 하나라도 집에 있는 날을 고려하게 된다. 두어 시간이라도 꼬실이를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꼬실이가 우리와 떨어져서도 많이 불안해 하지 않고 지낼 수 있는 집은 외가와 동호회 아우네 둘 뿐이다. 물론 밥도 물도 먹지 않지만 일단 콜콜 자기는 한다. 전화해 보아 시간 맞지 않으면 관람을 포기한다.
애를 안고 식당을 들어서다가, 개는 안 되는데요, 하는 종업원 말에는 두말않고 돌아서 나온다. 어쩌구 저쩌구 협상할 필요도 없다. 언젠가 동창모임에 갔는데 개는 들어갈 수 없단다. 내가 조금 늦게 갔기 때문에 이미 동무들은 죄다 앉아 먹고 있었던지라 옮기자고 할 수도 없었고, 당시에 아직 초등학생이던 딸이 차에 꼬실이와 함께 남았다. 나도 말거라 하지 않았고 딸도 전혀 불만이 없었다. 가끔 나와서 딸을 대신 들여보내며 아줌마 아저씨들 사이에서 밥 먹거라 고기 먹거라 자리를 바꿨을 뿐이다. 동무들도 우리 모녀를 전혀 이상하게 보지 않고 내 딸을 챙겨주었다.
꼬실이 생일이 어린이날이라 딸애는 한 번도 어린이날을 챙겨받지 못 했다. 그렇게 해줄 생각도 없었거니와 그런 요구를 받은 적도 없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려면 당연히 꼬실이 것도 마련해야 했다. 무엇이 갖고 싶다고 딸내미는 제 것은 물론 꼬실이를 대신해서 기도도 했다.
시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도 혼자 외가에 맡겨져 불안해 하지 않도록 딸애도 같이 가 있었다.
딸애는 일부러 의식하지 않으면 자기가 외동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학년 초에 자기소개를 할 때도, 우리 식구는 아버지 어머니 나 그리고 남동생 모두 넷, 이라고 했다.
......
이번 설을 지내면서 열일곱 살이 된 꼬실이와 그렇게 열여섯 해를 살았다.
개가 있는 집에 놀러갔다가 내 딸이 대접 받은 과자를 집어든다든지 했을 때 그 집 개가 쫓아오면 딸은 신기하다 했다. 장난감 공을 들고 던지려면 빤히 쳐다보다 손에서 놓기 무섭게 뛰어가는 것도 신기하다 했다. 너는 이게 보이니? 넌 내가 뭐 먹는지 알어? 꼬실이가 백내장으로 앞을 못 본지 반 년 지났다. 처음에는 답답하고 가슴이 아팠는데 어느 새 그게 우리 생활이 되었다. 화장실에 데리고 가고, 밥그릇 앞으로 데려가고, 물그릇을 밀어주어 살짝 코에 닿게 해 위치를 깨닫게 해주고...그런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러니까 다른 집 개들이 우리를 보고 있다가 행여 얻어먹을까 알짱거리거나 일어서려면 저희가 먼저 눈치채고 앞서 현관으로 뛰어나가는 둥 하는 행동이 낯설게 된 것이다. 확실히 생활 속에 꼬실이예요. 개가 앞을 본다는 게 신기하고 믿어지지가 않는 거 있죠.
# by | 2009/01/27 10:21 | 막둥 | 트랙백 | 덧글(2)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꼬실이는 정말 행복한 존재네요.
저도 나니에게 꼭 그렇게 해주고 싶어요.
자기가 행복하게 살았는지 알려줬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