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 시절과 비교할 것

어른들은, 특히 부모들은 서두르는 경향이 있다. 언젠가는 도달할 것이 분명한 것에 이상스럽게 집착하고 안달을 하는 적이 많다.

아직 이도 솟지 않은 애가 얼른 이유식이나 과자를 먹었으면 하고, 겨우 일어나 앉는 아이가 빨리 걷기를 바란다. 자기 아이가 벌써 기저귀를 뗐다고 자랑하고 싶어하고, 입술 소리나 겨우 하는 아이더러 무리하게 말을 하라고 앞에서 어른이 재롱을 부리며 혀 짧은 소리를 가르치려고 든다. 한창 기어다니는 아이가 어서 걸었으면 하고, 말을 겨우 시작한 아이에게 글자카드를 내밀며 억지로 그 작은 손에 연필을 쥐어주고 싶어 안달이다. 열 달도 안 되어 걷기 시작했다느니 돌 겨우 지났는데 못 하는 노래가 없다느니 아장아장 걸으면서도 TV에서 나오는 가수들 춤을 기가 막히게 흉내를 낸다느니 겨우 다섯 살인데 한글을 다 떼었다느니 자랑하고 싶어한다. 그러다 보니까 초등학교 때부터 한두 학년 미리 가르치려고 학원에 보내고, 모국어도 제대로 되지 않는 아이한테 영어를 가르치려고 골몰하는 것이다.

때가 되면 다 하게 되어 있다. 개중에 정말로 평생 깨우치지 못 하는 장애아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정상이다. 조금 늦게(?) 걷는다고 앉은뱅이로 평생 살 것 아니고, 조금 늦게 입 뗀다고 평생 벙어리로 살 것 아니다. 아이에 따라 조금 잘 하는 것이 있고 조금 못 하는 것이 있게 마련이지만 그래도 일단 여덟 살이면 학교에 가고 스무 살이면 대학에 간다. 그런 부분에 대해 느긋했던 나를 보고 되려 옆에서 안절부절해서 웃겼다. 모든 면에서 정상보다는 늦됐던 내 딸이지만 일단 접하고 깨우치고 관심을 갖고 나면 다른 아이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나아가서 그런 이들을 무색하게 했는데도 그들은 지치지도 않고 얼른 다음 단계를 생각해내서 미리 염려해주곤 했었다. 도대체 무슨 미친 짓이지.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무렵에 PC가 일반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걸 왜 안 사주냐고 내게 다그쳤다. 값이 얼만데 그걸 아이 장난감으로 마련을 하나. 장난감이 아니라 교육도구라 했다. 어쨌든 아이 교육 때문이 아니라 우리 어른들 필요에 의해서 컴퓨터를 사기는 했는데 자기 아이들은 무슨무슨 게임을 한다고 자랑하면서 한참 늦은 내 아이 걱정을 해줬다. 그러나 불과 반 년 정도 지나자 게임은 고사하고 타자 치는 것을 내 딸 따라올 동무가 없었다. 방과 후부터 잠들 때까지 그 앞에 붙어 앉아 있는 애보다 일주일에 이틀, 한 번에 두 시간만 허락받은 내 아이 실력이 더 빠르게 늘었다. 단순히 타자 치고 게임을 하는 수준이 아니라 웹에디터를 이용해 웹사이트를 만들고 포토샵이나 페인터 같은 그래픽 프로그램을 이용해 사진을 편집하고 그림을 그리기까지 했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아이들은 게임만 한다. 내 딸은 이제 게임은 안 한다. 더 흥미있는 게 많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였나 중학교부터였나, 버디버디라는 메신저가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을 했다. 그것으로 쪽지를 주고받거나 채팅을 하는데 딸애 타자속도가 워낙 빨라서(1분에 800타가 넘었다) 같이 노는 아이들이 당황했었다. 그렇게 몇 년을 지냈다. 또박또박 긴 문장을 맞춤법 맞춰 쓰는 아이한테 날아오는 답쪽지라는 게 몽땅 짧은 부호투성이인 것을 보니 한심했다. 그래서 네이트온이 더 나을 테니 그것을 쓰라 하자 일단 가입은 해놓고도 관심이 없었다. 단순하게 대화를 하는 것보다는 캐릭터를 예쁘게 꾸며 모양내는 것이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거기에 용돈을 많이 썼다. 그러면서 그 메신저에 부속되어진 미니홈피에도 또 돈을 들여 온갖 모양을 내는 데 골몰했다. 이번에는 싸이 미니홈피를 권했다. 그것도 가입을 하긴 했는데 그저 빈 페이지로만 두었다. 아이의 장난질을 보면서 나는 답답하기만 했다. 하지만 억지로 밀어붙일 생각은 없었다. 그냥 기다렸다.

이윽고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버디버디 메신저가 시시해지고 버디버디 미니홈피가 돈을 많이 들인 것에 비해 너무 유치하기만 하다고 느꼈나 보았다. 네이트온에 들어가니 대개 선배들 뿐이었지만 그래도 거기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캐릭터 따위 아무래도 좋고 이제 이야기를 나누는 데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었다. 뒤늦게 차츰 동기들도 합류를 했다. 그리고 싸이 미니홈피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그 즈음부터 아이는 사이버 카페 활동을 시작했었고, 거기에서 만난 이들과도 제법 이야기가 통하게 되었다. 학교 동무들만이 아닌, 다른 학교 다니는 선배들과도 교통을 하려니 싸이가 더 유용해진 것이다. 그 미니홈피를 꾸미는 데도 돈이 들었지만, 자기가 직접 스킨을 제작할 수 있게 되자 제가 공들여 특색 있는 모양으로 만드는 것이 기쁜 것 같았다.

이제 블로그를 소개했다. 기껏 동무들을 일촌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놓고 사이버 마실이나 다니면서 일상의 수다를 떠는 미니홈피에서는 얻을 수 없는 다른 것에 도전해 보거라 하는 뜻이었다. 주제를 정해놓고 블로그를 하면 좋을 것이라 했다. 그래서 블로그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그 때까지 가지고는 있지만 많이 소홀해졌던 개인 사이트를 없애고 거기에 두었던 제 그림 자료들을 옮겨왔다. 차곡차곡 지금도 그림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그냥 자료실로 쓰는 정도다. 아직은 동무 아닌 낯선 이들과 소통을 하는 즐거움을 모른다. 동무로만도 충분히 바쁘기 때문이겠지. 그러나 내가 알려주고 권한 길을 조금 늦어서라도 차근차근 밟아오던 아이니만큼 언젠가는 블로그에 푹 빠져들 것이라 생각한다.

자식을 기르면서 조급해지는 부모 마음이란 그 바탕에 비교하는 마음이 있어서이다. 다른 아이와 비교해 조금 더 낫다고 여기고 싶은 소박한 욕심이 도가 지나쳐 꼴불견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서두른다고 진짜 빠른 것 아니고 앞선다고 잘난 것 아니다. 누구나 과정이 있는 것이고, 거기에서 한두 발 앞서거니 뒤쳐지거니 하면서 걷는 것이다. 실제로 길에 나서보면, 등산이라도 해보면 알 것 아닌가. 마음 바빠 뛰더라도 언젠가는 지쳐서 잠시 앉아 땀을 식혀야 하는 것이고, 조금 천천히 걷는다고 정상을 못 밟으란 법은 없다. 사람이 사는 것, 아이가 자라는 것도 다 마찬가지다. 그 아이에게 맞는 '딱 그 때'가 있게 마련이다. 그 틀을 마련해주되 회초리 들고 몰아가는 일 없이 기다려주는 것, 그것이 부모가 할 일이다. 다른 아이와 비교할 것이 아니라 그 나이 때 내가 어땠는가를 반추해 보라. 아이는 부모를 닮는 법이고, 그러므로 내 그 시절을 돌아보아 거기에 비해 크게 손색이 없으면 잘 자라고 있는 것이라 믿어도 좋다. 나는 아이가 나보다 무섭게 앞서 나가는 게 싫다. 딱 나만큼, 그렇게 나를 닮은 내 딸이기를 바란다. 비록 나는 내 또래보다 다소 이른 편이었다고는 해도 기껏해야 한두 걸음 정도였을 뿐이고, 비록 내 딸은 자기 또래보다 다소 늦은 편이었다고는 해도 기껏해야 한두 걸음 정도였을 뿐이다. 나는 스무 살에 대학생 되었고, 지금 스무 살인 내 딸도 대학생이 되었다. 그러면 되지 않았는가.

by 暗雲姬 | 2009/04/01 17:44 | 교육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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