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원하는 이도 적은데

중간고사가 끝났으니 5월 첫주말에 과연합엠티를 간다고 했단다. 지난 번 야외스케치인지에 데어서 그런 데는 절대로 안 가겠다는 딸애가, 그 때야 교수들 참석하는 수업의 일환이라는 핑계라도 있어 간 거지만 그냥 단순엠티는 당연히 안 간다고 했다. 갔다온지 얼마나 됐다고 또 엠티예요. 입학한지 두 달도 안 됐는데 그런 공식적인 놀이터가 벌써 일곱 번이나 있었구요, 이게 여덟 번째예요. 도대체 정신들이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가지 않는 사람은 이유서를 작성하라나 뭐라나. 처음에는 과대표한테, 다음에는 조교한테 하라더니만 끝내는 과회장인 3학년 선배한테 허락을 받아야 한단다. 대체 엠티 가고 마는 것을 왜 그들에게 허락을 구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꽁알거리던 딸이 내게 양해를 구하고는 외할머니 제사 때문에 못 간다고 했다.

어제 과실에 갑자기 과대표의 공지가 나붙었단다. 연합엠티가 취소되었다고, 안 가는 사람 많아 그리 되었다고, 공지 뒤에 ㅋㅋㅋ가 붙었다네. 전달하는 과대표도 취소가 신난 모양이었다. 오죽하면 취소가 되었겠는가. 새내기 뿐 아니라 각학년마다 각양각색 못 가는 이유를 들고 오는 이가 그렇게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대개들 가는 거 싫어하는 거예요, 그죠, 그냥 밤 새고 놀고 마시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나 모여서 놀지 왜 엄한 사람들 끌어들이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밤에 메세지가 왔다고 했다. 이제 손전화기 없는 사람이 없으니까 공식적이건 사적이건 아무 때나 공지가 날아온다. 휴강한다는 교수 공지부터 과대표 공지까지 별별 게 다 있다. 이번 공지는 회화과 전체한테. 즉 내일(그러니까 바로 오늘) 저녁 9교시 후 전학년 집합하라는 과회장 공지란다. 치이, 누가 거기 가서 욕 먹을 일 있어요? 보나마나 엠티 취소시킨 참여율 저조 가지고 잔소리할 텐데요 뭐.

오래 전 우리들도 하지 않던 짓-연대를 한답시고 전체를 일사불란하게 잡고 흔들고 움직이려는 것은 왜 갈수록 심해질까. 그렇게나 개성을 강조하며 기성세대를 웃어대는 잘 나신 젊은이들이 어째 학교마저 군대처럼 만들고 서열을 매기지 못 해서, 그 서열대로 휘어잡고는 노는 것조차 뭉쳐서 해야 한다고 우기게 되었을까. 어쩌다 친해진 것 아니면 선배에 누구들이 있고 후배에 누구들이 있는지 모르는 채로 4년 다니다 졸업을 했던 우리들인지라 고등학교 조회시간도 아닌데 꼬박꼬박 전체학년이 획일적인 모임을 갖는다는 것이 영 이상하기만 하다. 이 아이들은 혼자가 불안한 걸까.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 나가서 열심히 지연 찾고 학연 찾아 어딘가에 소속이 되어야 보호받고 안전하다고 느껴질 것을 선배들한테 누누이 듣고는 미리 그 판을 짜놓으려고 그렇게들 열심일까. 세대 안에서의 그런 기류 때문에 졸업하면 특정 직장에 입사를 할 확률이 적은 예술계 학생들마저 같은 짓을 해야 하나. 한 학교 한 학과가 늘 얼굴 마주대하여 열심히 친목을 도모하고 얼굴을 익혀야나 나중에 공모전에서 상을 주고받고 한다는 소린가. 얘네들이 측은하다면 듣는 편에서 기분 상하겠지만, 사실이 그러한 걸 어떡해. 모든 게 그들 탓이 아닌 건 알지만, 세상을 이렇게 돌아가게 한 건 유감이지만, 그렇다고 재빠르게 적응하고 더 심화시키며 사는 모습들이 너무 한심하다. 행여 우리들이 그리로 몰아가고 그렇게 만들었다 하더라도 젊은 그 기운으로 그것을 바꾸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듯이 보여서 하는 말이다. 참 어렵게들 산다.

by 暗雲姬 | 2009/04/29 15:34 | 교육 | 트랙백(1)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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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雜記帳 at 2009/04/30 08:57

제목 : 핑계 대지 마
어차피 원하는 이도 적은데 에 엮었다.요즘 애가 신났다. 얘기만 듣던 대학생으로서의 시간을 살기 때문이다. 강의시간에 맞춰 느긋하게 가고 일찍 끝나면 그대로 집에 오거나 다른 학교 간 동무들 만나러도 가고, 얼굴에서 피로가 싹 가신 느낌이 든다. 중간고사 기간 동안 과제가 더 나오지 않아 적어도 이번 주일은 이렇게 여유만만하다는 거다.오늘은 중간 두 시간 빌 뿐 1교시부터 9교시까지 촘촘한 날이다. 그래서 또 새벽에 나갔지만 수업이 그리 짜여 ......more

Commented by 부뚜막고양이 at 2009/04/29 22:01
제가 예술대가 아닐 뿐더러 제가 속해 있는 과가 다른 문과대 소속 과들에 비해서 개인주의가 심하다고 자체 평가되는 과예요. 그래서 학년간 인사식(?) 같은 것은 하지도 않았고 인원수가 너무 많아 할 수도없는 과인고, 확실히 친구들 이야기들어도 과마다 대학마다 문화랄까 분위기 랄까 그런게 다 틀리기 때문에 그 동안 암운희님 글 읽으면서 그냥 그런갑다 했는데요. 저녁 집합은 정말 당황스럽네요. 집합 시킬 시간에 자신들의 술자리 문화에 대한 반성같은 것은 해볼 생각 안하고-왜 매력적인 엠티 자리가 기피 대상이 되었는지-그냥 갈구면 된다라는 생각. 저 고등학교 때 동아리에서 엠티 갈 때도 이러진 않았어요. -_-;;;

정말 그런 의미에서 최소한 여자아이들에게 술 강요안하고, 엠티가서도 술보다는 게임이나 이야기에 치중하는 우리 과가 감사해지네요.
Commented by 暗雲姬 at 2009/04/30 07:53
나도 참 황당했습니다.
아이 얘기를 듣기로는, 같이 교양과목 듣는 타과 학생들도 다 제각각이라더군요.
비슷한 데도 있고, 얘네들을 괴물 보듯이도 하고.
특징이나 분위기 다른 거야 충분히 이해할 일이지만, 그래도 그런 식으로 몰아가서야 안 되는데...
Commented by 랑쁘 at 2009/04/30 08:26
어릴때 부터 자유로운사고를 못하게 자랐던 아이들의성향이 대학에 가서 갑자기 고삐를 풀리니까, 생각해서 행동을 못하는게 아닌가 싶네요. 대학은 자율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애들..이런 대학의 문화가 만들어 진데는 역시 기성세대의 잘못이라 생각됩니다. 엄마들의 극성이 만들어낸겁니다.
Commented by 暗雲姬 at 2009/04/30 08:58
그렇지요...
언제나 젊은 사람들한테서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 우선 미안한 마음부터 듭니다.
Commented by LaJune at 2009/05/01 01:59
참 이상해요. 대규모든 소규모든 모임이 생성되면 그 안에서 꼭 머리가 되어 쥐고 흔들고싶어하는 사람이 생기는가봐요. 사람들끼리 이간질시키고, 지 맘 내키는대로 자르고 말고 제 깜냥껏 사람들 머리 위에 순위 매겨서 제멋대로 휘두르려고 하고 ... 작년에 당한 어이없는 일이 또 떠오르네요. =_=;;;
Commented by 暗雲姬 at 2009/05/01 07:06
그걸 권력이라고 알고 있는 게지요.
Commented by 알겠어요 at 2009/05/04 11:00
나름 자유로운 대학생활을 보냈던 터라 참 당황스럽네요...
오히려 저희는 너무 개인플레이가 심했던 터라 거기 끼지 못했던 애들이 괴로워하고 고민했던 적은 있지만,
결국 사회에 나오니 그런 건 다 부질없더군요. 어떤 네트워크를 형성하느냐는 결국 자신만의 몫...
Commented by 暗雲姬 at 2009/05/04 11:14
모듬생활조차 쫓기듯 하는 것 같아서 안쓰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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