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5월 04일
그래도 고마워
생전 처음 가는 집에서도 우선 이리저리 탐색부터 하고는 반드시 화장실을 찾아가 용변을 보던 아이, 강아지 때 처음 오줌 똥 가리고부터 단 한 번도 실수를 하지 않았던 녀석. 그 녀석이 눈 안 보이고 귀 어두워지고 냄새를 못 맡으면서 방향을 잡지 못 하니까 화장실을 못 찾는다. 안고 있을 때만, 차에 탔을 때만, 그리고 방에 있을 때만 거기서 쉬야 하고 응가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 참을 뿐이다. 그러니까 즉 방을 나선 거실이 자기 화장실이라고 여기게 된 것이다. 하지만 대견한 건, 남의 집에 가면 무조건 참는다. 낌새를 채고 얼른 화장실에 데려다줘야 한다.
거실 전체를 화장실로 여기는 건 아니다. 화장실 부근에 한한다. 그래서 몇 달 전부터 화장실 문앞에 발매트 대신 오줌 패드를 깔았고, 옆에 있는 문갑 아래 틈새로 오줌이 흘러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해 뱅 돌아가며 패드를 반으로 접어 둘러놨다. 하지만 그렇게 패드를 찾아 누는 일은 참 드물다. 패드에 올라서 그 앞 맨바닥에 싸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거실 바닥이 어둡고 얼룩거리는 모노륨이어서 묻은 게 잘 보이지 않는 터라 아침에 일어나면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고 밤새 어디다 오줌을 눴는지 살펴서 닦아야 한다. 먼저 오줌을 닦아내고, 다음에 물로 닦고, 다시 탈취제 뿌리고. 처음에는 오로지 걸레로만 닦았는데 걸레가 일주일을 못 가고 나달거리며 헤져나갔다. 몇 개를 번갈아 쓴다고는 해도 쉬지 않고 빨아서 짜대야 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드니까 참는 힘도 약해져 조금씩 자주 누는 데 당해낼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우선 흥건한 것은 휴지로 닦아낸다. 휴지도 너무 빨리 써 버려서 할 수 없이 커다란 건물 화장실에서나 쓰는 어마어마하게 큰 두루마리를 사다놓고 쓴다.
오늘 아침에도 발칵 뒤집혔다. 오줌 뿐 아니라 똥도 누어놓은 것이다. 그런데 힘을 주면서 등을 동그랗게 만 채 발을 옮겨디디다 보니까 그만 제똥을 밟은 모양이었다. 똥 묻은 발자국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물론 그렇게 나가서 똥 누고 들어와 다시 내 곁에서 얌전히 자는 중이었다. 당장 어떤 발로 밟았을까 살펴 똥이 굳어 붙은 발바닥을 씻긴 다음 내 이불을 찬찬히 살폈지만 거기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거실에서 방을 찾아 자박자박 걸어다닌 흔적이 점점 엷어진 것으로 보아 발에 묻은 것을 거실바닥에 다 옮겨묻히고 들어온 듯. 우선 거실에 있는 똥덩이들을 집어 치운 다음에 말라붙은 것 찾아내 박박 닦아내느라 이른 아침부터 팔이 다 저렸다. 보통 때도 녀석이 똥을 눌 때면 지켜보고 있다. 행여 밟기라도 할까 봐 휴지 한 줌 들고서 그 옆에 대기한다. 그런데 밤 사이에 이렇게 싸 버리면 대책이 안 선다.
그래도 녀석이 보이지 않고 냄새도 맡지 못 해 다행이다 싶다. 눈이 보이던 1년 전만 해도 길을 걷다 발에 물이 묻기만 해도 탈탈 털어대던 녀석이었다. 한쪽 다리 들고 오줌을 누다가 흘러서 다른 발에 묻으면 질겁을 하며 뒷걸음질 치던 녀석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오줌이 묻건 똥이 묻건 밟고 다니건 모르는 것이다. 내가 귀찮은 게 문제가 아니다. 딱히 눈이 보이지 않아서 뿐 아니라 나이가 들면 괄약근이 약해져 오줌이건 똥이건 참기 힘드는 건 사람이나 짐승이나 마찬가지다. 앞이 보이던 끝무렵에 벌써 그런 조짐이 있어서, 부지런히 화장실로 가다가 더 참지 못 하고 도중에 오줌을 지린 적이 몇 차례 있었다. 그 때 풀 죽어 내 겨드랑이에 얼굴을 묻고 우는 것을 달래느라고 애를 먹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일은 점점 늘어났겠지. 다만 그 후 곧 시력을 잃어서 화장실을 못 찾는 게 도중에 실례를 한 것과 겹쳐졌을 것이다. 만약 여전히 앞을 보고 냄새를 맡을 수 있었음에도 그런 일이 자꾸 벌어지면 얼마나 자존심 상하겠는가. 요즘 들어 더 잠이 많아진 녀석이 내가 휴지니 걸레니 들고 설치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평화롭게 자는 것을 보니 일단 마음이 놓였다.
병을 앓는 일 없어 고마워. 잘 먹어주어 고마워. 딴에는 오줌 똥 가리겠다고 맡기지도 않는 냄새를 맡으려 하며 화장실 찾아 한참 헤매는 그 습관이 고마워. 그리워할 줄 알고 기다릴 줄 알고 반가워할 줄 알고 어리광 부릴 줄 알고 수줍어할 줄도 알고 화를 낼 줄도 알고 삐지기도 하고...여전히 풍부한 감정을 고스란히 보여줘서 고마워. 누나가 장난으로 "아얏" 소리 지르면 비록 귀가 어두워 잘 듣지 못 하는 와중에도 어렴풋이 느끼고는 왕왕 짖어줘서 고마워. 언제나 누나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살아주는 충성심이 고마워. 아무 것도 포기하지 않고 가고 싶은 데 가겠다고 콩콩 박고 울면서도 찾아나서는 고집이 고마워. 밀어주는 밥그릇을 마다하고 혼자서 찾으려는 자존심이 고마워. 무엇보다도 한결같이 옆에 있어줘 고마워. 앞으로도 오래오래 이렇게 있어주어. 하루에 스무 번을 걸레 들고 쫓아다녀도 좋아. 있어만 주는 것으로도 무진장 고마워, 아들!
거실 전체를 화장실로 여기는 건 아니다. 화장실 부근에 한한다. 그래서 몇 달 전부터 화장실 문앞에 발매트 대신 오줌 패드를 깔았고, 옆에 있는 문갑 아래 틈새로 오줌이 흘러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해 뱅 돌아가며 패드를 반으로 접어 둘러놨다. 하지만 그렇게 패드를 찾아 누는 일은 참 드물다. 패드에 올라서 그 앞 맨바닥에 싸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거실 바닥이 어둡고 얼룩거리는 모노륨이어서 묻은 게 잘 보이지 않는 터라 아침에 일어나면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고 밤새 어디다 오줌을 눴는지 살펴서 닦아야 한다. 먼저 오줌을 닦아내고, 다음에 물로 닦고, 다시 탈취제 뿌리고. 처음에는 오로지 걸레로만 닦았는데 걸레가 일주일을 못 가고 나달거리며 헤져나갔다. 몇 개를 번갈아 쓴다고는 해도 쉬지 않고 빨아서 짜대야 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드니까 참는 힘도 약해져 조금씩 자주 누는 데 당해낼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우선 흥건한 것은 휴지로 닦아낸다. 휴지도 너무 빨리 써 버려서 할 수 없이 커다란 건물 화장실에서나 쓰는 어마어마하게 큰 두루마리를 사다놓고 쓴다.
오늘 아침에도 발칵 뒤집혔다. 오줌 뿐 아니라 똥도 누어놓은 것이다. 그런데 힘을 주면서 등을 동그랗게 만 채 발을 옮겨디디다 보니까 그만 제똥을 밟은 모양이었다. 똥 묻은 발자국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물론 그렇게 나가서 똥 누고 들어와 다시 내 곁에서 얌전히 자는 중이었다. 당장 어떤 발로 밟았을까 살펴 똥이 굳어 붙은 발바닥을 씻긴 다음 내 이불을 찬찬히 살폈지만 거기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거실에서 방을 찾아 자박자박 걸어다닌 흔적이 점점 엷어진 것으로 보아 발에 묻은 것을 거실바닥에 다 옮겨묻히고 들어온 듯. 우선 거실에 있는 똥덩이들을 집어 치운 다음에 말라붙은 것 찾아내 박박 닦아내느라 이른 아침부터 팔이 다 저렸다. 보통 때도 녀석이 똥을 눌 때면 지켜보고 있다. 행여 밟기라도 할까 봐 휴지 한 줌 들고서 그 옆에 대기한다. 그런데 밤 사이에 이렇게 싸 버리면 대책이 안 선다.
그래도 녀석이 보이지 않고 냄새도 맡지 못 해 다행이다 싶다. 눈이 보이던 1년 전만 해도 길을 걷다 발에 물이 묻기만 해도 탈탈 털어대던 녀석이었다. 한쪽 다리 들고 오줌을 누다가 흘러서 다른 발에 묻으면 질겁을 하며 뒷걸음질 치던 녀석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오줌이 묻건 똥이 묻건 밟고 다니건 모르는 것이다. 내가 귀찮은 게 문제가 아니다. 딱히 눈이 보이지 않아서 뿐 아니라 나이가 들면 괄약근이 약해져 오줌이건 똥이건 참기 힘드는 건 사람이나 짐승이나 마찬가지다. 앞이 보이던 끝무렵에 벌써 그런 조짐이 있어서, 부지런히 화장실로 가다가 더 참지 못 하고 도중에 오줌을 지린 적이 몇 차례 있었다. 그 때 풀 죽어 내 겨드랑이에 얼굴을 묻고 우는 것을 달래느라고 애를 먹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일은 점점 늘어났겠지. 다만 그 후 곧 시력을 잃어서 화장실을 못 찾는 게 도중에 실례를 한 것과 겹쳐졌을 것이다. 만약 여전히 앞을 보고 냄새를 맡을 수 있었음에도 그런 일이 자꾸 벌어지면 얼마나 자존심 상하겠는가. 요즘 들어 더 잠이 많아진 녀석이 내가 휴지니 걸레니 들고 설치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평화롭게 자는 것을 보니 일단 마음이 놓였다.
병을 앓는 일 없어 고마워. 잘 먹어주어 고마워. 딴에는 오줌 똥 가리겠다고 맡기지도 않는 냄새를 맡으려 하며 화장실 찾아 한참 헤매는 그 습관이 고마워. 그리워할 줄 알고 기다릴 줄 알고 반가워할 줄 알고 어리광 부릴 줄 알고 수줍어할 줄도 알고 화를 낼 줄도 알고 삐지기도 하고...여전히 풍부한 감정을 고스란히 보여줘서 고마워. 누나가 장난으로 "아얏" 소리 지르면 비록 귀가 어두워 잘 듣지 못 하는 와중에도 어렴풋이 느끼고는 왕왕 짖어줘서 고마워. 언제나 누나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살아주는 충성심이 고마워. 아무 것도 포기하지 않고 가고 싶은 데 가겠다고 콩콩 박고 울면서도 찾아나서는 고집이 고마워. 밀어주는 밥그릇을 마다하고 혼자서 찾으려는 자존심이 고마워. 무엇보다도 한결같이 옆에 있어줘 고마워. 앞으로도 오래오래 이렇게 있어주어. 하루에 스무 번을 걸레 들고 쫓아다녀도 좋아. 있어만 주는 것으로도 무진장 고마워, 아들!
# by | 2009/05/04 13:40 | 막둥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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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오랫동안 꼬실이가 있어서 이런 글로 근황을 전해 들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
고맙습니다!
요즘 종종 얼음집의 애완동물 카테고리에서 놀고 가는 1人입니다.
아직 회원가입도 하지 않아 비로그인인것을 용서하세요.
다만 닉네임은 제가 평소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님의 글을 읽고 마음이 찡해서 답글을 남깁니다.
있어만 주는 것...그저 한결같은 마음으로 내 옆에 있어주는것...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소중한 일인지 아는 사람은 많이 없을 것 같아요..
꼬실이는 알고 있을까요
그저 있어만 주는 것으로도 얼마나 큰 위안이 되고..
얼마나 많이 행복하고 감사한지..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인간이 얼마나 많이 위로받는지...
부디 꼬실이가 앞으로도 아프지 말고 조금이라도 더 오래 님과 함께 행복하기를 빕니다.
그런데 내가 꼬실이한테 어떤 존재인지 가끔은 궁금해요.
딱 한 마디만 나눠봤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