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그거야!

신나게 아침잠 낮잠 다 자고 난 녀석이 내가 책 읽고 있는 옆에서 꼬무락거리며 자꾸 귀찮게 굴었다. 잘 때는 심심해 깨우고 싶다가도 정작 깨서 툭툭 건드리면 이번엔 내가 성가시다. 눈으론 책 읽으며 오른손으로 책장 넘기고 왼손으로 머리며 목덜미며 조물락조물락, 어느 순간 돌아보니 코오 잠이 들었다. 잠시 내려다 보다 이내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리는데 메세지 삐릭. 동네 거의 다 왔다는 딸내미 호출.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 호젓한 길을 한참 걸어와야 하기 때문에 어둑할 때는 절대 혼자 걸리지 않는다. 메세지 받고 5분 있다 나가면 딱 맞으니까 슬슬 일어나 양말 신고 조끼 입고 키 챙길 때까지...녀석은 머리도 들지 않았다. 한 번 자면 오래 자니까 살짝 다녀오지 뭐, 이러고 조용조용 집을 나섰다.

징검다리 연휴라 그런지 서울 들어가는 길 말고 반대로 나오는 길도 차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다른 때보다 조금 더 기다려서 아이를 태우고 다시 집에 돌아오기까지 아마 20분쯤 걸렸을 거다. 그런데, 딸애가 문을 밀자 바로 앞에 녀석이 서 있었던 것. 어머, 깼어? 나도 같이 놀라서 애가 가방을 내려놓는 사이 먼저 막둥이를 달랑 안았다. 아이가 돌아보더니, 심통이 잔뜩 났네요, 볼이 퉁퉁 부었어요, 그랬다. 내가 미안하다며 볼을 비벼도 자꾸 고개를 돌리고 내리라고 버둥거리기만 했다. 바닥에 내려눟으니 허둥거리며 누나한테 달려가 안겨서는 싹싹 볼이고 입으고 핥아댔다. 어어, 깨보니 아무도 없었어? 그래서 무서웠어? 애가 달래면서 볼기짝을 토닥토닥, 누나 턱밑에 제 머리를 넣고는 어지간히 속상했는지 꾸웅 울었다. 보고 있자니 이산가족 만나도 그런 게 없겠다 싶은 게 우스워서 일부러 내가 다시 빼앗아 안았다. 미안해, 그렇게 금방 깰 줄 몰랐지, 화 풀어, 자, 엄니한테도 뽀뽀, 이러고 달래는데 절대로 내 쪽으로 얼굴을 돌리지 않았다. 목을 비틀어 외면하면서 그저 자꾸 버둥대기만 했다. 내려놓기 무섭게 다시 누나한테 가서는 한숨까지 포옥 쉬는 게, 누가 보면 내가 어지간히 구박이라도 한 줄 알겠다. 그렇게 내가 데려오면 버둥대며 누나한테 보내달라 하고, 누나한테 가서는 얼굴 파묻고 꽁꽁 일러대고...재미있어서 여러 차례를 빼앗아왔고, 그 때마다 너무 노골적으로 싫다고 눈꼬리를 치켜올렸다.

그렇게 삐져서 두 시간도 더 보낸 것 같다. 언제나 그랬다. 목욕을 시켜도, 병원에 데려가도, 어쩌다 목소리 한 번 높여도...그 즉시에는 나밖에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있다가도 딸애만 돌아오면 달려가 연신 뒤를 힐끗거려 나를 훔쳐보며 꽁알꽁알 일러대곤 했었다. 아무래도 내게 제일 불만이 많은 녀석. 제가 싫은 건 다 시키고 해대는 게 나니까 당연히 그렇겠지. 저 아픈 것 생각하지 않고 내가 병원 데려가 주사 맞히는 것만 싫을 테고, 먹고프다는 대로 다 줄 수는 없으니까 빈 그릇 핥고 있어도 모른 체하고...그런 게 제딴에는 고까웠을 거다. 어쩌냐, 누군가는 악역을 맡아야 하는 법. 그래서 나보다도 아비를, 누나를 더 찾는다. 하지만 그래도 급할 때면 나만이 자기를 지켜준다는 것도 안다. 천둥 번개 치면 덜덜 떨면서 꼭 나한테 온다. 누나가 안고 토닥여도 기어이 나한테 달려와야만 한다. 꼬르륵 뱃속이 요동을 치고 설사를 해도 내게 와 붙어 눕는다. 사람이나 개나 어쩌면 그리 똑같은지. 평소에 성가시게 하는 어머니가 썩 달갑지 않으면서도 정작 가장 자기를 위하고 지켜줄 수 있는 건 어머니밖에 없다는 것, 그걸 딸애나 막둥이나 다 알고 있는 거다.

매사에 어머니 고맙습니다, 이 세상에서 어머니가 최고예요, 어머니 없으면 못 살아요...만약 아이가 시시때때로 이런 말을 한다면 얼마나 징그럽고 어색하겠는가. 내게 떼 쓰고, 잘못하여 야단 맞으면 안 보이게 살짝 눈도 흘기고, 살살 거짓말도 해가며 저 하고픈 짓 몰래 하기도 하고...그렇게 커가는 것에 잔소리를 하더라도 사실은 그 존재만으로도 가슴 그득하고 고맙게 마련이다. 너무 깎듯하게 예의 차리고 고분고분하면 허물없는 자식이란 생각이 안 들고 내 쪽에서도 역시 자식 대하기가 어려울 거다. 그런 것처럼, 나는 저 녀석이 가끔 내게 삐지고 화내면서 얼굴을 휙 돌려 버리는 게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제가 나를 어렵게 생각하면 감히 그런 짓 하겠는가. 어쩌다 정말 화가 나서 큰소리를 내고 콧등이라도 톡 때릴 때면 절대 그러지 못 한다. 내가 안으면 얌전히 안기고 눕혀놓으면 그대로 곱게 누워 있고 부르면 얼른 몸 일으켜 쳐다보고 그런다. 그건 나를 무서워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럴 일이야 한 해에 한 번이나 있을까 말까, 보통은 오늘처럼 고개 돌리고 툴툴대면서 시위를 하는 꼴이다. 녀석이 그러는 걸 보면 자꾸 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앵돌아져 있는 옆모습에서, 나는 어머니를 사랑해요, 나는 어머니를 믿어요, 하는 마음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 바로 그거야! 너와 나 사이!

by 暗雲姬 | 2009/05/04 23:27 | 막둥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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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꿈꾸는사람 at 2009/05/05 07:28
너무 너무 예쁘겠어요. ^^
Commented by 暗雲姬 at 2009/05/05 08:03
아이구, 아예 녹아요 녹아. ㅎㅎ
Commented by 랑쁘 at 2009/05/06 12:07
동물들이 사람과 꼭 같이 생각 하고있다는게, 요즘 하이디가 많이 증명해 주고 있더라구요..말 한마디 라도 함부로 해선 안된다는거 많이 깨우치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暗雲姬 at 2009/05/06 13:38
살아 있는 것은 죄다 마찬가지겠지요.
하이디를 보면서 느낀 것은, 그들은 이해하려 하고 용서하려 하는데 정작 사람은 우선 남의 탓으로 돌리려 한다는 것.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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