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냥이

우리 마을은 시골이니까 집 없이 떠도는 고양이를 길냥이라는 말보다 들냥이라는 말로 일컫는 게 더 어울릴 것 같다. 도시 길냥이들보다 더 넓은 곳을 뛰어다녀서 그런가, 어디든 달아날 데 있고 숨을 데 있어 그런가, 절대로 사람에게 곁을 주지 않는다. 보통 우리 집에 나타나면 3,4년은 보게 되는데 매번 밥을 주고(없을 때나 저희가 빤히 보는 데서나) 부르고 친근하게 굴어도 절대 근처에 다가오는 법이 없다. 내 딸이 카메라 들고 살금살금 나가도 멀찍이서도 후다닥 달아나기만 해 자주 섭섭해 한다. 밤에 현관 앞 소나무 위에 올라앉아 꼬리 살랑살랑 흔들 때 그 푸른 빛 뿜는 눈을 보노라면 내가 숲속에 들어와 있다는 착각을 하게도 한다.

발정기 되면 사방에서 우는, 아기울음 닮은 고양이들 소리. 그리고 싸움이라도 났다 치면 밤새 잠을 이를 수 없을만치 시끄럽다. 그런데 오늘 새벽, 새벽이라고는 해도 이미 동이 터 훤한 이른 아침, 뒤쪽 밭쪽에서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대개 훤해지면 발정내는 소리도 싸우는 소리도 잦아들게 마련이다. 밝은 시간에는 죄다들 어디로 숨는지 고양이 맞닥뜨리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그 시간에 웬? 씻으러 세면실 들어갔던 딸애가 쪽창으로 내다보니 밭에 두 마리 고양이가 마주보고 양양댄다며 후다닥 뛰어나와 부리나케 카메라 챙겨들고 다시 들어갔다. 창에 방충망이 있는데 그것을 열면 소리 때문에 달아날 것 같아서 모기장 너머로 흐리게 보일 각오를 하고 찍었다는데, 어라, 줌으로 잔뜩 당기며 초점을 바깥에 두었더니 방충만이 거의 안 보이더라고 보고했다.

사진 몇 장과 동영상까지 하나. 둘이 털색깔이 아주 똑같다. 그리고 하나가 약간 작은 듯. 동영상을 보니...아무래도 엄마가 자식 교육을 시키는 중인 것 같다. 가끔 아주 조그만 아기를 거느린 어미가 혹독한 교육을 시키는 것을 본 적은 있다. 우리가 예쁘다고 고기 들고 부르면 호기심 많고 겁이 없는 아기 고양이들은 쫓아오게 마련이다. 그 때 나무 그림자 아래 숨어서 어미가 나즈막한 목소리로 부르면 마지못해 돌아가는데, 우리가 보는 자리에서도 호되게 손으로 얼굴을 갈겨 새끼가 땅에 구르는 걸 여러 번 보았다. 그 때 내는 목소리라니...어휴, 섬뜩하다. 몇 번 그런 일 겪고 나서는 아무리 귀여워도 절대 아기를 부르지 않는다. 괜히 예쁘다고 했다가 엄마한테 맴매 맞게 할 수는 없잖아.

오늘도 보아하니 아이가 엄마한테 야단맞는 듯. 그런데 이렇게 엄마와 비슷하게까지 자란 아이가 야단맞는 것은 처음 보았다. 걔네들도 사람처럼 제법 크면 엄마한테 반항을 하나 보다. 동영상 보니까 엄마 말 안 듣다가 더 호된 나무람을 듣고서야 움츠리는 듯한 모습이 보여 한참 웃었다. 털까지 곤두세우고 정색을 하며 야단치는 엄마 모습이라니. 사춘기 애들 교육시키기는 사람이나 고양이나 다 수월치 않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자니 어쩌면 이제 다 컸으니 너대로 살고 더 이상 따라다니지 말라고 쫓아내는 건 아닐까 몰라. 아직 세상이 무섭고 서툰 아이한테는 엄마의 매정함이 야속하기만 하기도 하겠다. 속내가 어떤지 생각해 보지도 않고 그 모습이 우습고 재미있다고 낄낄댄 게 문득 미안해지려 한다. 사람 애들이야 아직 제 앞가림도 못 하면서 튀어나가려고만 하지만, 그건 독립을 꿈꾸는 게 아니라 간섭을 배제하고 싶은, 그러니까 필요한 돈은 주되 더 이상 우리를 들볶지는 말라는 얌체 같은 이기를 부리는 거다. 즉 진화의 최정점에 서 있는 사람은 자식이 부모를 밀어내는 형편이요, 동물은 살아가는 훈련을 위해서라도 얼른 떠나라고, 한편으로는 다시금 홀가분하게 임신을 하여 부지런히 종족을 번식하려는 본능의 역할을 위해 머뭇거리는 자식을 독촉하는 셈인데, 만약 동영상에 찍힌 장면이 바로 그런 것이라면, 그건 웃을 일이 아니라 숙연하게 바라보아야 할 일이 아니겠나. 

by 暗雲姬 | 2009/05/07 11:41 | 걔네들 | 트랙백(1) | 핑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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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雜記帳 at 2009/05/07 11:42

제목 : 길냥이들 대화
저 애들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골목길 가운데 차지하고 앉아서 한참 동안 저렇게...기다리는 사람은 생각도 않고. 참다 못 해 빵! 하니 슬그머니 돌아보고 마지 못 해 갈라지는 모습에 괜스레 미안해 혼났다....more

Linked at 雜記帳 : 덫 아니야 at 2009/06/03 16:34

... 왜 굳이 몹쓸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지난 가을부터 우리집 주변을 맴도는 노랑이가 있다. 새끼를 낳았는지 비슷한 아이와 짝을 이뤄 다니더니 한 달 전에는 그 애를 쫓아내는 광경도 보았다. 밤에 뜰을 내려서면 베란다 구석에 누웠다가 후다닥 달아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소나무 가지 위에 늘어져 꼬랑지만 흔들며 눈으로 빛을 쏘기도 한다 ... more

Commented by 흑곰 at 2009/05/07 12:30
동영상으로는 냥타이거쯤 되보이는 -_-;;;
Commented by 暗雲姬 at 2009/05/07 12:49
진짜 시골 들냥이들은 야생성이 더 강해요.
걔네들 보면 호랑이와 표범 등과 같은 과라는 걸 실감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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