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가보니

서울에서 한두 시간 거리에 있는 우리집이니까 서울이 영 낯설 리는 없다. 여기서 스물 한 해를 살았지만 고향이 서울인 나는 말할 것도 없고, 외가와 친가가 죄다 서울에 있는 딸애한테도 마찬가지다. 내가 동무들 만나러 가는 곳도 서울이요, 여기서 쉽게 구하지 못 하는 것을 사러 후딱 달려가는 곳도 서울이니까 내 딸은 태어나서부터 걸핏하면 서울에 가 있는 셈이다. 명동도 인사동도 대학로도 강남도 신촌도 낯선 곳이 아니다. 학교에서 동무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의외로 서울에 한 번도 안 가본 아이들이 있다며 그걸 되려 신기해 했었다.

자, 이제 대학생활 한지 두 달 넘겼다. 나를 따라 가는 게 아니라 저 혼자 가는 서울, 그리고 거기에서 만나 같이 어울리며 생활하는 서울 학생들. 밥집이고 찻집이고 쇼핑센타고 하나도 낯설지 않아 어리버리하지는 않는단다. 물론 요즘엔 촌도 도시와 진배 없긴 하지만 그래도 그런 걸 일상으로 지내진 않는 터라 도시로 진학한 동무들이 곤혹스러워하는 것에 비하면 내 딸은 태연자약하게 그 모든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행한다는 것. 다만 늘 내 차에 얹혀다니던 것과 달리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며 움직여야 하는 게 낯설었지만 그것도 이내 익숙해졌다. 하지만 처음에는 별다른 구별을 둘 일 없을 줄 알았던 과우들과 갈수록 세세한 면에서 다름이 나타난다는 것. 촌뜨기 내 딸은, 그러나 절대 도시내기는 되고 싶지 않다 했다.

오밤중까지 잘도 돌아다니고, 걸핏하면 바깥잠도 태연하게 자는 게 이상하단다. 우리 동네는 일단 밤이 늦으면 교통편이 다 끊기니까 택시 아니면 마냥 돌아다니지도 못 하고, 편의점 빼고는 늦은 밤까지 드나들 상점이 없다. 그리고 아직은 시골사람들이 자식들을 더 챙기는 편이라 외박이 흔하지 않은 것.
아무 데나 돌아다니는 개를 마주치는 적은 거의 없는데다가. 더구나 도시 길냥이들은 부르면 다가오고 비비며 놀기도 한단다. 반면에 길에 죽어 있는 짐승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그 점은 좋은 것 아니겠냐고. 죽을 짐승이 있어야 죽지. 그리고 비둘기가 엄청 많더라고. 하지만 다리가 온전하게 갖춰진 비둘기가 많지 않아 마음이 아프다네. 솔개나 독수리나 백로나 왜가리는 절대로 구경할 수 없고 참새도 아직 보지 못 했단다. 까치가 있기는 한데 참새보다 조금 큰 정도라고 느껴질 정도로 작아 먹을 것이라도 사서 던져주고 싶다는데.
흙을 밟을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도 이상하단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신발 바닥이 말끔한 것에 영 적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포장도로 뿐이니까 조금만 걸으면 발바닥이며 무릎이 아파서 힘들다 하고. 또한 자동차들이 항상 반짝거리는 것도 신기하다고. 그것도 신발에 흙 묻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겠거니 깨달았다 했다. 바람이 불어도 흙먼지 날리지 않아 눈 감을 필요가 없는 것은 좋다네.
서울이라고 산이 없는 것도 아니니 멀리 보이는 산은 분명히 푸른데 자기가 걷는 길은 삭막, 가로수 빼면 푸르른 나무를 가까이서 볼 수 없는 것도 숨이 막힌다네. 가로수 밑둥에 조금 있는 흙에 풀이 하나도 나 있지 않은 것도 이상한 일. 매일 풀을 뽑는 사람을 따로 고용한 것일까 묻는다.
그래도 학교에는 작지만 동산도 있고 나무도 있긴 한데, 거기에서 사진학 듣는 선배의 모델을 해주려다 민들레밭에 엎디는 게 좋을 것 같아 찾아보니 딱 세 뿌리 있더란다. 우리 마을이라면 그 정도 넓이 땅에서 수천 개는 보았음직한데 그 흔한 민들레가 없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
강 위로 전철이 가면서 아래 강물 넘실거리는 것을 보는 것은 기이한 경험이었다. 다리 끊어지면 퐁당 빠질 것 아니냐며.
옆에 있는 과우가 아프다든지 자빠진다든지 해도 흘낏 보고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처음에는 미처 몰랐거니 했단다. 하지만 같은 일이 자꾸 반복이 되고 그 사람들은 본래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만 정나미가 떨어지더란다. 그냥 낯빛이 조금 어둡기만 해도 염려하고 위로하는 분위기에서 스무 해를 살아온 터라 그 무관심에 황당하더라고.
놀러나가자 하면 으례 죄다 술집으로 아니면 영화관으로. 중학교 졸업하자마자 첫 반창회 때 어른 흉내 내고 싶어하는 고1 짜리들이 한 짓이라는 게 소주 사고 고기 사고 상추 사서 계곡에 가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삼겹살 구워먹은 건데, 그런 내 딸이 도시 아이들의 건물 순례가 불쌍하게 여겨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점심 사먹으러 나가도 고르는 메뉴부터가 마을 동무들과 달라서 자기 식성을 놀리더라는. 쉬는 날이나 명절이라고 해도 노는 행위를 들으면 참 답답하고 심심하겠단다. 과우들한테 대보름 잔치의 쥐불놀이에 대해서, 얼음판 위에서 팽이 치고, 물 부어 얼린 논에서 스케이트 썰매 타고, 연 날리고, 요즘 한창 볼 수 있는 논 태우기...따위 흥미진진한 얘기를 하면 모두들 외계인 보듯 한다고, 그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르더라고, 말이 안 통한다고 궁시렁.

그 외에도 다른 게 많겠지. 딸애한테 거의 매일 보고(?) 받는 것 가운데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게 이 정도다. 가끔 더 좋겠다 편하겠다 하는 것이 있긴 하지만 대개는 썩 달갑지가 않더라 한다. 그래서일까, 타지방으로 진학한 동무들이 차비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주말마다 기를 쓰고 집에 돌아오려고 한다. 전국토의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는 이제, 머지않아 모두들 도시로 편입이 되어 자라던 시간 다 잊고 몸 편한 도시인으로 살겠지만, 그래도 지금까지의 추억이라도 간직하게 될 것은 너희들 행운일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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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暗雲姬 | 2009/05/07 13:51 | 삶..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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