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6월 03일
덫 아니야
우리 동네는 도심이 아니고 촌이니까 길냥이라기보다는 들냥이라고 하는 게 맞는 것 같은 아이들이 있다. 서울 냥이들은 우리 동네 냥이들하고 달라요. 우리 냥이들은 가까이 갈 수도 없어서 사진 찍을 때도 만날 줌으로 당겨서 찍어야 하는데 얘네들은 내가 한 손으로 만지면서 찍어도 돼요. 올해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 딸애가 학교 부근에 돌아다니는 길냥이들과 친해져서 부르면 오기도 하고 들고 간 간식을 주면 먹기도 하고 부비부비 다정하게 굴어서 좋아 죽겠단다. 어디든 사람들이 바글대는 곳에서 사는 탓이겠지. 시골 들냥이들은 정말 야생이니까 사람 기척만 나도 내뺀다. 밭에 음식 찌꺼기를 버리는 시골에서는 어쩌면 먹을 것을 구하기는 더 쉽겠다. 하지만 그 아이들의 로테이션 주기는 도시보다 더 빠르다. 열악한 환경에서 굶주림이나 다툼으로 이어지는 3~5년 주기의 길냥이보다 더 짧은, 들냥이의 생애는 기껏 1년 정도 되는 것 같게 보인다. 죽임을 당하기 때문이다. 우선 도시보다 한적한 도로에서 질주하는 차량에 의한 로드킬은 월등히 많을 것이고, 보다 적극적인 것은, 주민들이 약을 놓기 때문이다. 도시나 촌이나 떠돌이 짐승에 대한 야박함은 마찬가지여서 기껏 밭에 버려진 음식이나 탐하는 것도 봐주지 못 하겠단다. 물론 가끔 허술한 닭장을 노리지 않는 건 아니지만 사실 그런 피해는 들냥이들에 의한 것보다 다른 야생짐승에 의한 것이 더 많을 텐데도 말이다. 어쨌든 가까이 할 수는 없어도 늘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눈에 익힌 그 아이들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들으나 안 들으나 우리 딴에는 담뿍 정을 붙일 만하면 어느 날 밭가에서 늘어진 시체로 발견되기 일쑤다. 그렇게 죽여봤자 몇 주 안에 또 새로운 애들이 나타나 어슬렁거리는데 왜 굳이 몹쓸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지난 가을부터 우리집 주변을 맴도는 노랑이가 있다. 새끼를 낳았는지 비슷한 아이와 짝을 이뤄 다니더니 한 달 전에는 그 애를 쫓아내는 광경도 보았다. 밤에 뜰을 내려서면 베란다 구석에 누웠다가 후다닥 달아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소나무 가지 위에 늘어져 꼬랑지만 흔들며 눈으로 빛을 쏘기도 한다. 전부터 음식 남은 것-쓰레기가 아니라-이 있으면 꼭 그릇에 담아 내놓았었다. 생선, 고기, 탕수육 등 냉장고에 보관해도 될 것이지만 한 끼 먹은 것으로 만족하고 남은 것은 들냥이에게 주기로 하고 있었다. 남의 집에 갔다가 일부러 얻어오기도 하고, 정 줄 것이 없으면 일부러 생선 한 마리 구워 내놓기도 했다. 들냥이 전용 그릇을 두었더니 지나던 어르신들이 자꾸 들고가셨다. 그릇이 필요한 게 아니라 내가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게 못마땅하신 듯. 할 수 없이 그릇을 요리조리 눈에 안 띄게 숨겨두느라고 고심을 해야 했다. 그래도 냄새로 금방 찾아내 먹고 간다. 고양이 코와 사람의 눈에서 고양이 코가 이기는 거다.
언젠가 고양이를 기르던 동무가 이사하면서 도저히 기를 곳이 못 되어 다른 이에게 주었다며, 같이 챙겨보내지 않아 남은 사료를 내게 가져가라 했었다. 그걸 갖고 와 그릇에 부어주었더니 처음에는 먹지를 않아 사나흘씩 그대로 있곤 했다. 수의사가 말하기를, 고양이에게는 가능하면 고양이용 사료를 주라 했다. 거기에는 밤눈을 밝히는 성분이 있어 그게 고양이에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쥐에게 바로 그 성분이 있어 고양이가 쥐를 잡는 것이라 했다. 그 말을 듣고나니 무슨 일이 있어도 들냥이에게 사료를 먹여야 겠다 싶어서 일부러 사료 외에는 아무 것도 그릇에 담아두질 않았다. 두어 주일 지나니까 사료에 조금 입을 댄 흔적이 있더니 차츰 한 그릇을 먹는 속도가 빨라지고 드디어 하루 한 번씩 한 그릇을 꼬박꼬박 비워내지 않는가. 얼마나 대견하던지.
1년 미처 안 된 요 노랑이도 사료를 잘 먹는다. 지난 주에 바빠서 이틀 정도 미처 챙기지를 않고 깜빡 잊고 지나쳤는데, 어느 날 저녁 때 나가니까 저만치에 앉아서 나를 뚫어지게 보는 것이었다. 내가 나가도 내빼지 않는 경우가 처음이어서 처음에는 그저 신기하다 하고 보았다. 참 눈치도 없지, 들어왔다 다시 나가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나를 보고 똑바로 앉아 있는 게 이상했다. 꼭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하는 듯이 보였다. 잠시 마주보고 있다가 불현듯 깨달은 게, 사료를 며칠 주지 않은 것이었다. 아이고 미안해라. 부랴부랴 사료를 부어주고 살그머니 들어와 창으로 보니까 후딱 튀어올라가는 게 먹으러 가는 모양이었다. 내 얘기를 들은 딸은, 머지않아 쟤를 만져볼 수 있는 것 아닐까요, 했다. 꿈도 참 야무지지. 아마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어쨌든 매일 내가 밥 주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었다.
집 뒤에 허드레 나무 쌓아놓은 곳에 그릇을 놓아두었는데 봄이 되니 그쪽 밭으로 일 나가시는 어르신들 눈에 띌 것 같아 옮겨야 겠다 싶었다. 이번에는 어디에 둘까, 이제 내가 밥 주는 것을 기다리고 있으니 집 가까이 두어도 괜찮지 않을까...궁리하다가 베란다 끝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 놓아두었다. 다음 날 나가니 말끔히 비어 있었다. 그래, 여기다 두면 지나는 어르신들이 볼 수도 없고, 행여 보더라도 내 집이니까 들어와서 들어낼 수도 없을 거고, 딱 좋다. 혹시라도 흙먼지 날아와 그릇에 들어갈까 걱정되어 안 쓰는 쓰레받기를 계단에 기대 세워놓았다. 무게가 나가는 사기그릇이니까 쓰레받기를 옆으로 눌러받치는 꼴이 되어 안심이었다. 비 오실 때도 계단 위에서 흐르는 빗물을 쓰레받기가 막아줄 것이었다.
어제부터 바람이 무시무시하게 불었다. 비는 잠깐 후두둑 떨어지다 마는데 바람은 쉬지 않고 불어제끼고, 방향도 마구 바뀌어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아직 덜 어두운 저녁 무렵 늘 밥 주던 그 때에 다시 사료 가득 부어주고 쓰레받기를 잘 세워 버텨주고 들어왔다. 두어 시간 지나서 노랑이가 다 먹었나 나가봤더니...쓰레받기가 바람에 쓰러졌는지 그릇을 덮고 있고 그 앞에 사료가 흩어져 있지 않은가. 어둠 속에서 주섬주섬 쏟아진 사료를 다시 주워담고, 직접 비가 들이칠 염려는 없어 보여 쓰레받기를 아예 치워 버렸다. 얘기를 듣고 난 딸애가, 혹시 먹고 있는데 쓰레받기가 엎어져 놀라 달아난 거 아닐까요, 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 후다닥 몸을 비키다가 조금 쏟았지 싶다. 그릇 옮겨놓은지 열흘 남짓 되었는데 그런 일을 당했으니 부쩍 의심이 들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밤새 몇 번이나 가서 확인을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더 이상 노랑이가 다녀간 흔적은 없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혹시 놀랄까 살금살금 나가보았지만 사료는 그대로 있었다. 아무래도 쓰레받기를 덫으로 생각한 건 아닐까, 딸과 둘이 마냥 걱정을 했지만 아니라고 깨닫게 할 방법이 없다. 또 그릇을 옮겨주어야 하려나 보다. 마을사람들로부터 제일 안전한 자리인데 그 쓰레받기 때문에...속이 상했다.
그런데...오늘 아침 일찍 일이 있어 나갔다 오니 그릇이 말끔히 비워져 있다. 아이고 다행이다. 비가 그렇게나 쏟아지고 있었는데도 와서 밥을 먹고 간 것이다. 무시무시한 쓰레받기가 없어져서 안심을 한 것일까. 어쩌면 저쪽 수풀 속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부러 소리내어 말을 했다. 덫 아니야, 너를 잡을 생각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와서 먹어. 알아 들었을까. 빈 그릇을 보면서 자꾸 혼자 싱글싱글 웃는다. 모쪼록 너는 1년 이상, 내년 봄에도 후년 봄에도 여기 와서 밥 먹었으면 좋겠다.
지난 가을부터 우리집 주변을 맴도는 노랑이가 있다. 새끼를 낳았는지 비슷한 아이와 짝을 이뤄 다니더니 한 달 전에는 그 애를 쫓아내는 광경도 보았다. 밤에 뜰을 내려서면 베란다 구석에 누웠다가 후다닥 달아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소나무 가지 위에 늘어져 꼬랑지만 흔들며 눈으로 빛을 쏘기도 한다. 전부터 음식 남은 것-쓰레기가 아니라-이 있으면 꼭 그릇에 담아 내놓았었다. 생선, 고기, 탕수육 등 냉장고에 보관해도 될 것이지만 한 끼 먹은 것으로 만족하고 남은 것은 들냥이에게 주기로 하고 있었다. 남의 집에 갔다가 일부러 얻어오기도 하고, 정 줄 것이 없으면 일부러 생선 한 마리 구워 내놓기도 했다. 들냥이 전용 그릇을 두었더니 지나던 어르신들이 자꾸 들고가셨다. 그릇이 필요한 게 아니라 내가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게 못마땅하신 듯. 할 수 없이 그릇을 요리조리 눈에 안 띄게 숨겨두느라고 고심을 해야 했다. 그래도 냄새로 금방 찾아내 먹고 간다. 고양이 코와 사람의 눈에서 고양이 코가 이기는 거다.
언젠가 고양이를 기르던 동무가 이사하면서 도저히 기를 곳이 못 되어 다른 이에게 주었다며, 같이 챙겨보내지 않아 남은 사료를 내게 가져가라 했었다. 그걸 갖고 와 그릇에 부어주었더니 처음에는 먹지를 않아 사나흘씩 그대로 있곤 했다. 수의사가 말하기를, 고양이에게는 가능하면 고양이용 사료를 주라 했다. 거기에는 밤눈을 밝히는 성분이 있어 그게 고양이에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쥐에게 바로 그 성분이 있어 고양이가 쥐를 잡는 것이라 했다. 그 말을 듣고나니 무슨 일이 있어도 들냥이에게 사료를 먹여야 겠다 싶어서 일부러 사료 외에는 아무 것도 그릇에 담아두질 않았다. 두어 주일 지나니까 사료에 조금 입을 댄 흔적이 있더니 차츰 한 그릇을 먹는 속도가 빨라지고 드디어 하루 한 번씩 한 그릇을 꼬박꼬박 비워내지 않는가. 얼마나 대견하던지.
1년 미처 안 된 요 노랑이도 사료를 잘 먹는다. 지난 주에 바빠서 이틀 정도 미처 챙기지를 않고 깜빡 잊고 지나쳤는데, 어느 날 저녁 때 나가니까 저만치에 앉아서 나를 뚫어지게 보는 것이었다. 내가 나가도 내빼지 않는 경우가 처음이어서 처음에는 그저 신기하다 하고 보았다. 참 눈치도 없지, 들어왔다 다시 나가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나를 보고 똑바로 앉아 있는 게 이상했다. 꼭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하는 듯이 보였다. 잠시 마주보고 있다가 불현듯 깨달은 게, 사료를 며칠 주지 않은 것이었다. 아이고 미안해라. 부랴부랴 사료를 부어주고 살그머니 들어와 창으로 보니까 후딱 튀어올라가는 게 먹으러 가는 모양이었다. 내 얘기를 들은 딸은, 머지않아 쟤를 만져볼 수 있는 것 아닐까요, 했다. 꿈도 참 야무지지. 아마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어쨌든 매일 내가 밥 주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었다.
집 뒤에 허드레 나무 쌓아놓은 곳에 그릇을 놓아두었는데 봄이 되니 그쪽 밭으로 일 나가시는 어르신들 눈에 띌 것 같아 옮겨야 겠다 싶었다. 이번에는 어디에 둘까, 이제 내가 밥 주는 것을 기다리고 있으니 집 가까이 두어도 괜찮지 않을까...궁리하다가 베란다 끝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 놓아두었다. 다음 날 나가니 말끔히 비어 있었다. 그래, 여기다 두면 지나는 어르신들이 볼 수도 없고, 행여 보더라도 내 집이니까 들어와서 들어낼 수도 없을 거고, 딱 좋다. 혹시라도 흙먼지 날아와 그릇에 들어갈까 걱정되어 안 쓰는 쓰레받기를 계단에 기대 세워놓았다. 무게가 나가는 사기그릇이니까 쓰레받기를 옆으로 눌러받치는 꼴이 되어 안심이었다. 비 오실 때도 계단 위에서 흐르는 빗물을 쓰레받기가 막아줄 것이었다.
어제부터 바람이 무시무시하게 불었다. 비는 잠깐 후두둑 떨어지다 마는데 바람은 쉬지 않고 불어제끼고, 방향도 마구 바뀌어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아직 덜 어두운 저녁 무렵 늘 밥 주던 그 때에 다시 사료 가득 부어주고 쓰레받기를 잘 세워 버텨주고 들어왔다. 두어 시간 지나서 노랑이가 다 먹었나 나가봤더니...쓰레받기가 바람에 쓰러졌는지 그릇을 덮고 있고 그 앞에 사료가 흩어져 있지 않은가. 어둠 속에서 주섬주섬 쏟아진 사료를 다시 주워담고, 직접 비가 들이칠 염려는 없어 보여 쓰레받기를 아예 치워 버렸다. 얘기를 듣고 난 딸애가, 혹시 먹고 있는데 쓰레받기가 엎어져 놀라 달아난 거 아닐까요, 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 후다닥 몸을 비키다가 조금 쏟았지 싶다. 그릇 옮겨놓은지 열흘 남짓 되었는데 그런 일을 당했으니 부쩍 의심이 들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밤새 몇 번이나 가서 확인을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더 이상 노랑이가 다녀간 흔적은 없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혹시 놀랄까 살금살금 나가보았지만 사료는 그대로 있었다. 아무래도 쓰레받기를 덫으로 생각한 건 아닐까, 딸과 둘이 마냥 걱정을 했지만 아니라고 깨닫게 할 방법이 없다. 또 그릇을 옮겨주어야 하려나 보다. 마을사람들로부터 제일 안전한 자리인데 그 쓰레받기 때문에...속이 상했다.
그런데...오늘 아침 일찍 일이 있어 나갔다 오니 그릇이 말끔히 비워져 있다. 아이고 다행이다. 비가 그렇게나 쏟아지고 있었는데도 와서 밥을 먹고 간 것이다. 무시무시한 쓰레받기가 없어져서 안심을 한 것일까. 어쩌면 저쪽 수풀 속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부러 소리내어 말을 했다. 덫 아니야, 너를 잡을 생각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와서 먹어. 알아 들었을까. 빈 그릇을 보면서 자꾸 혼자 싱글싱글 웃는다. 모쪼록 너는 1년 이상, 내년 봄에도 후년 봄에도 여기 와서 밥 먹었으면 좋겠다.
# by | 2009/06/03 16:34 | 걔네들 | 트랙백 | 덧글(4)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요놈은 내 기척을 느끼면 내빼지 않고 고개를 뽑아 빼꼼히 지켜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