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크

오른쪽 엉치가 가끔 거북하고 아프고 했다. 자다가도 끙 돌아눕느라 버둥대는 적이 있기도 했다. 그러면서 두어 해 지났다. 처음에는 그냥 늙는 거겠거니 혼자 혀나 차다 말았다. 아프기는 엉치가 아픈데 왜 "아고 허리야"를 입에 붙이게 됐을까 몰라 낄낄거렸다. 아무튼 가끔은 걷는 것도 어설퍼질 때가 있어서 혀 차는 일 늘었는데, 이즈막에 와서 더 잦게 아프고 불편하다. 조금 더 늙었나 부지, 웃고 넘기는 여유만으로 대처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 건, 얼마 전부터 그게 그냥 엉치만의 일은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전에도 허벅지가 나무토막 같게 느껴지는 살짜쿵 마비증상이 오는 듯 가는 듯 스치곤 했었지만 하루 이틀 그러다 말았으므로 거의 신경 쓸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오래 가기도 하고 부위가 옮겨다니다가 점점 넓어지다가...종일 내 기분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엉치에서 고관절로 흘러 허벅지까지 뻣뻣하게 굳는 듯하다가 저리고 아리고 반짝거리고...적당하게 표현할 말도 찾지 못 하면서 신경이 온통 거기에 쏠려 있으니 생활에 지장이 되는 거라.

병원에 가야지 가야지 생각만 하고 말만 하고...그래도 몸을 움직이기 힘들다든지 하는 게 아니라 기분만 찝찝했으니까 자꾸 미루게 되었다. 병원 가는 것 좋아하는 이가 누구 있을까만, 혹시 큰 돈 들어갈 일이면 어쩌나 우선 걱정이 되고, 혹시 몹쓸 병이라도 붙었으면 어쩌나 다음 걱정이 되고...차일피일 미루니 딸내미가 몇 마디 했다. 그래, 아니라면 다행이고 닥칠 일이라면 받아들여야 하는 것, 무조건 피하고 들자고만 해선 안 되겠지.

사진만 찍었다. 아마 열두 장쯤?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뼈를 들여다보는 게 재미있고, 그것도 내 뼈나 내 식구 뼈면 더 신기하다. 잠시 내가 아파서 왔다는 것도 잊고 열심히 들여다 보았다. 병원에 가는 일이 드문 나로서는 사진 찍어 모니터로 전송하게 된 시스템도 감탄스러웠다. 그게 이제는 새로운 게 아니라는데도 나는 처음 보는 것이니 감기 몸살 외에 병원 갈 일 없기는 없었구나. 결과는, MRI처럼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일단 X선 사진으로는 디스크란다. 중증은 아니라서 지금은 약으로 달랠 수 있다고. 디스크판이 오른쪽 신경을 눌러 그쪽이 아프고 저리고 하는 건데, 더 심해질 때나 조치(?)해야 한단다. 조치라 함은 수술? 어리벙벙 의사님 말씀만 듣노라고 물어보지도 못 하고 나와서 집에 와 생각이 났다. 참 어지간히 멍청하군. 그래도 죽을 병 아니라니 다행이지 뭐. 큰돈 들일 일이었다면 설령 고칠 가능성 있어도 고스란히 죽음만 기다려야 할 한심한 처지에 이쯤으로 판명난 게 좀 고마운 일인가.

이 나이엔 그렇게 하나 둘 고장나고 망가지고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것, 나한테만 닥치는 일 아니니까 의기소침할 일 아니다. 웬만하면 떠날 때까지 남 신세 안 지고 무난히 조심조심 움직여야 할 텐데, 자리에 누워 입만 살아서는 안 되는데...사람으로서 가장 큰 욕심이요 행운이겠지. 그게 원대로만 된다면야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가끔은 타고난 건강에 대해서 부모님께 감사한다. 요즘이야 워낙 골골하지만 그것도 이 상황에선 양반이라, 이런 스트레스 감내하며 이 정도로 버티는 건 부모님이 주신 건강 아니었다면 꿈도 못 꿀 일일 테니.

사실 두 해 한 번 할 수 있는 건강검진하러 가야 하는데, 딸내미가 방학이어서 평일에도 막둥이 볼 수 있을 때 맡겨놓고 가곤 했는데...가기 전에 망설여지고, 가서 순서를 기다리며 앉아 있는 것도 싫고, 결과 나오는 날까지의 그 오스스함이라니. 지금 부모님이 주신 건강에 대해 고맙네 어쩌네 큰소리 치지만 과연 언제까지 내게 행운이 머물 것인가. 재작년 다녀오고서 두 해 지나 이제 또 속으로 어떻게 곪아들었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리고 한편으로는 병원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으로서 마치 내가 기계인 것만 같게 여겨져서 영 불쾌하기도 하다. 옛날옛날 적당히 늙고 적당히 아프다 적당하게만 살고 가는 거겠거니 했던 조상님네가 부럽다. 온통 까뒤집어 찾아내서 뭘 어쩌자는 건지, 그래서 고쳐대고 갈아가면서 얼마나 더 살자는 건지, 그렇게 살아서 무얼 더 할 게 있다는 건지. 의학의 발달로 목숨에 대해서 스스로 자유롭지 못 하고 욕심에 사로잡혀 버린 건 아닐까. 젊어 죽건 늙어 죽건 그것이 받은 천수일 텐데도 절대로 용납하려 들지 않고 평균치 아니 최대치를 정해놓고 거기에 맞춰야 하노라고 고집 부리는 것이 때로는 아름답지 못 하다 여겨지기도 한다. 내가 행여 그 지경에 도달하면 의연하게 받아들여야 할 텐데 하는 걱정을 하나 더했다. 어쨌든 어제 받아온 약 다 먹으면 다음 주쯤 검진 가야지. 공짜잖어. 솔직히, 아무리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다하지 않는댔지만, 가기 싫고 무서운 건 무서운 거다. 그래도 마냥 피하기만 해서야 쓰겠는가. 나이가 몇인데. 식구들 짐 덜어준다 치고 꼼꼼히 챙겨야지. 아직 내 목숨은 내 자유로 쓸 수 없다.

by 暗雲姬 | 2009/07/01 08:22 | 삶..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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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nadal at 2009/07/01 09:45
아프지 마요. 아프면 서러울까봐 저는 안 아플라구요. 뭐 배가 아프거나, 그런거랑은 좀 다르게 생각이 돼요. 늙어 가면서 아픈거는 좀 서러울것 같아요. 아직도 철없는 저는 나이를 인정 안합니다. 생각은 20대 라면서 몸은 40대 50대가 된다면 그건 좀 이율 배반일것 같아서요..너므 오버 했나?
Commented by 暗雲姬 at 2009/07/01 10:12
그런데요...나는 참 신기해요.
조금씩 약해지고 스러지고 그러는 거 지켜보면서 이제 내가 나를 조금 더 소중하게 조심해서 다뤄야 겠다는 생각도 들고, 엄니 생각도 나서 그 때 이해 못 했던 여러 증상들에 대해서 죄송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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