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7월 01일
사랑이란다
평생을 제 하고픈 일 하느라고 나머지는 다 무시하고 살아온 동무가 있다. 하고 싶은 건 학교에서 가르치지도 않고 되려 방해하고 시간 뺏는다고 중학교 졸업하고 더 이상 진학을 마다한 채 집 뛰쳐나와 배우고 싶은 것 배우면서 살았다. 이제 거기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할 수 있겠으나 어차피 제도권 학교에서 권하지 않은 거면 뻔한 것, 결코 돈 만들지 못 하는 일이라 평생 그 꼴로 산다.
그래도 결혼은 했다. 결혼만 해주면 무어든 감수하겠다는 여자한테 인심 써주듯 결혼하고서 진짜 각시 버려두고 제 길 따라 떠돌기만 했다. 그런데 이 무던한 각시, 정말 초심을 지키며 이제껏 잔소리 한 마디 안 하고 견뎌주었다. 늦은 결혼에서 이내 아들 하나 낳고 서방이라는 건 훌훌, 각시 혼자 일하고 애 기르며 그야말로 가물에 콩 나듯 명절에나 간신히 얼굴 보여주는 남편에게 생활비 받기는커녕 되려 몇 푼 집어주기까지 하면서. 그러고도 남편 일에 소용된다 연락 오면 기를 쓰고 맞춰 만들어내는 건 물론이요, 남편의 지인들도 필요하다면 팔 걷어붙이고 자기 재능을 내주는 착한 여자다. 정말 복덩이여. 그러다 늘그막에 어쩌다 술 마신 김 실수(?)로 딸 하나 더 만들었다.
요 딸이 또 희한타. 아비가 집에 가면 "엄마, 아저씨 왔어"로 알리고, 겨우 아비라는 거 터득하고도 어두워져 저 잘 때 되면 아빠는 언제 회사 가느냐고 내쫓으려 하고, 집 나서는 아비더러 "아빠, 또 오세요"...그렇게 하면서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이제 그 애가 4학년. 비로소 아비를 아비로 인식해 깨우치고, 전처럼 갖고 싶은 거 있을 때나 전화하는 얌체가 아니라 정말 아비를 그리워하기도 하는 듯. 큰놈이나 작은년이나 자식에 대해서는 무슨 장난감 인형 정도로나 신기하고 재미있게 여겨오던 동무가 계집애 곰살궂은 표현을 대하면서 비로소 아비가 되어가는 듯하다.
먹고 살려고 억지로 매어 있는 일이 시원하게 풀리지도 않고 거푸 사기다 뭐다 맞으면서 그나마 있던 것도 날리고 빈 손이 되었다. 그래도 작은애가 크니까 비교적 몸이 자유로운 각시가 이리저리 일 따라다닐 수가 있어서 집에 대한 걱정은 던 편인데(하긴 언제는 걱정 말고는 달리 할 능력이 된 적 있던가만) 당장 제 한몸 뉠 데가 없게 되어 버렸던 동무.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는가, 후배가 팔 걷어붙이고 자리 하나 찾아주어 두어 달 전에 점방을 냈다. 거기에 또 매이면 자기 일 지장이야 있겠지만 그래도 한 켠에 작업대도 놓을 만큼 넉넉하니까 아주 맞춤하다. 이제 시작이니 손님도 없어 걸핏하면 혼자서 술잔이나 기울이며 자리 지키기에나 골몰하는데, 먹을 것 걱정은커녕 손님 없어 작업하기 좋다나 뭐라나. 에휴, 나이 쉰은 헛먹은.
엊그제 딸아이가 자기 손으로 만든 카드를 보냈더란다. 4학년 짜리가 어설프게 쓴 그 카드글 석 줄, 끝 한 줄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아빠, 영원히 건강하세요!" 그걸 읽고 소주만 마시며 왜 이다지 보고 싶은지 모르겠다던 동무는, 아무래도 일요일 쯤엔 집에 좀 다녀와야 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 말 끝난지 다섯 시간도 안 되어 집이라고 연락이 왔다. 도저히 참지 못 하겠어서 점방 문 닫고 기차 타고 집으로 달려갔다는 것이다. 내 동무가 이렇게 예쁘게 느껴진 게 처음인 것 같다. 동무에게 메세지 넣었다.
"망령 나기 전에 철 들어 다행이다. 아비 노릇이라는 게 돈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랑 심어주는 거다."
그래도 결혼은 했다. 결혼만 해주면 무어든 감수하겠다는 여자한테 인심 써주듯 결혼하고서 진짜 각시 버려두고 제 길 따라 떠돌기만 했다. 그런데 이 무던한 각시, 정말 초심을 지키며 이제껏 잔소리 한 마디 안 하고 견뎌주었다. 늦은 결혼에서 이내 아들 하나 낳고 서방이라는 건 훌훌, 각시 혼자 일하고 애 기르며 그야말로 가물에 콩 나듯 명절에나 간신히 얼굴 보여주는 남편에게 생활비 받기는커녕 되려 몇 푼 집어주기까지 하면서. 그러고도 남편 일에 소용된다 연락 오면 기를 쓰고 맞춰 만들어내는 건 물론이요, 남편의 지인들도 필요하다면 팔 걷어붙이고 자기 재능을 내주는 착한 여자다. 정말 복덩이여. 그러다 늘그막에 어쩌다 술 마신 김 실수(?)로 딸 하나 더 만들었다.
요 딸이 또 희한타. 아비가 집에 가면 "엄마, 아저씨 왔어"로 알리고, 겨우 아비라는 거 터득하고도 어두워져 저 잘 때 되면 아빠는 언제 회사 가느냐고 내쫓으려 하고, 집 나서는 아비더러 "아빠, 또 오세요"...그렇게 하면서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이제 그 애가 4학년. 비로소 아비를 아비로 인식해 깨우치고, 전처럼 갖고 싶은 거 있을 때나 전화하는 얌체가 아니라 정말 아비를 그리워하기도 하는 듯. 큰놈이나 작은년이나 자식에 대해서는 무슨 장난감 인형 정도로나 신기하고 재미있게 여겨오던 동무가 계집애 곰살궂은 표현을 대하면서 비로소 아비가 되어가는 듯하다.
먹고 살려고 억지로 매어 있는 일이 시원하게 풀리지도 않고 거푸 사기다 뭐다 맞으면서 그나마 있던 것도 날리고 빈 손이 되었다. 그래도 작은애가 크니까 비교적 몸이 자유로운 각시가 이리저리 일 따라다닐 수가 있어서 집에 대한 걱정은 던 편인데(하긴 언제는 걱정 말고는 달리 할 능력이 된 적 있던가만) 당장 제 한몸 뉠 데가 없게 되어 버렸던 동무.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는가, 후배가 팔 걷어붙이고 자리 하나 찾아주어 두어 달 전에 점방을 냈다. 거기에 또 매이면 자기 일 지장이야 있겠지만 그래도 한 켠에 작업대도 놓을 만큼 넉넉하니까 아주 맞춤하다. 이제 시작이니 손님도 없어 걸핏하면 혼자서 술잔이나 기울이며 자리 지키기에나 골몰하는데, 먹을 것 걱정은커녕 손님 없어 작업하기 좋다나 뭐라나. 에휴, 나이 쉰은 헛먹은.
엊그제 딸아이가 자기 손으로 만든 카드를 보냈더란다. 4학년 짜리가 어설프게 쓴 그 카드글 석 줄, 끝 한 줄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아빠, 영원히 건강하세요!" 그걸 읽고 소주만 마시며 왜 이다지 보고 싶은지 모르겠다던 동무는, 아무래도 일요일 쯤엔 집에 좀 다녀와야 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 말 끝난지 다섯 시간도 안 되어 집이라고 연락이 왔다. 도저히 참지 못 하겠어서 점방 문 닫고 기차 타고 집으로 달려갔다는 것이다. 내 동무가 이렇게 예쁘게 느껴진 게 처음인 것 같다. 동무에게 메세지 넣었다.
"망령 나기 전에 철 들어 다행이다. 아비 노릇이라는 게 돈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랑 심어주는 거다."
# by | 2009/07/01 10:45 | 삶..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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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 식구들이 서로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아끼는 것...아이들이 그런 것 깨우쳐가면서 아름다이 자라는 모습...어른들 책임이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