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겨울이 더 좋다

오늘 아침에도 밥을 갖다 버렸다. 일주일에 2~3일은 이렇게 한다. 먹지도 못 할 밥에 욕심을 내면서 꼭 달라고 합시고는 한 숟갈 뜨는 둥 마는 둥 헤집어 침만 잔뜩 섞어놓고 일어서는 인간. 그렇게 퍼마시고 입맛 있으면 그게 괴물일 테지만, 괴물 아닌 증거 대라면 먹는다고나 말든지. 그거 받아 내가 꾸역꾸역 먹어대며 부모님 아래 귀한 딸이었던 내 입을 쓰레기통 취급하지 않으려면 버리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진한 뼈국물 냄새 풍풍 풍기는 하얀 쌀밥 내지는 오골오골 오곡밥을 밭 한 곁에 훌훌 쏟아 버릴 때마다 양심이 찔린다. 그건 스무 해 넘어 해오면서도 영 익숙해지지 않는 양심이다. 나도 내 양심의 질김에 놀랄 지경이니. 좌우간 그래서 여름보다 겨울이 좋다. 아무도 밭에 드나들지 않는 겨울, 거기에 내다 버린, 쓰레기라고 하기엔 너무 아까운 그 먹거리들이 혼자 얼다 녹다 하면서 자연스레 썩어 흔적을 지우는 겨울이 얼마나 맘이 편한지 모른다. 오늘도 할머니 할아버지 밭에 나오시면 혀를 쯔쯔 차겠네. 아우, 정말 낯 뜨거워 미치겠다.

by 暗雲姬 | 2009/07/03 08:49 | DRy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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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랭보 at 2009/07/03 10:52
흥미로운 소설의 도입부 처럼 글맛이 좋군요.


Commented by 暗雲姬 at 2009/07/03 10:56
어차피 사는 것보다 더 소설다운 건 없기 마련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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