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참 미련했지

동호회 아우네 갔다가 만두 얘기가 나왔다. 저는 만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나는 먹고 토하는 한이 있더라도 만두라면 언제나 오케이인지라 귀가 솔깃했다. 얘기인즉, 근처에 만두 맛있게 하는 집이 있는데 사람들이 죄다 좋아하더라, 자기는 일부러 찾지는 않지만 남들과 몇 번 먹어봤는데 맛있기는 하더라, 이런 거다. 어허, 여태 그걸 모르다니. 후딱 일어섰다. 막둥이는 맡겨놓은 채 혼자 지갑만 들고 나섰다. 먼 길 아니라니까 차는 놓고 걸어갔다 오지 뭐. 그래서 사온 만두를 정말 배 터지게 맛있게 먹었다. 그렇지 않아도 오전 내내 우르르꽝꽝 비 쏟아치고 천둥 번개 법석을 떠는 와중에 따끈한 만두 생각이 부쩍 나서, 특히 울 엄니표 만두가 먹고 싶어서 눈물이 다 그렁거렸었는데.

만두 얘기가 아니다. 걷는 얘기다. 만두집까지 왕복 30분 정도 걸렸다. 집중호우 지나고 난 길은 깨끗하고 오후의 햇살도 맑았다. 그 길을 슬렁슬렁 걸어갔다 오고나서 갑자기 깨달은 게,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다녀왔다는 거다. 그래, 아무렇지도 않게! 그리고는 지난 2,3년간 거의 걷지 않았던 생각이 났다. 바빠서도 아니고 걷는 게 귀찮아서도 아니었다.

유난히 걷는 걸 좋아해서 한두 시간은 예사로 여겼었다. 대학 때는 새벽에 통금 해제되자마자 뛰어나와 걸어서 1교시에 대 학교까지 가는 짓도 흔히 했었다. 삐쩍 마른 몸집 어디에 그렇게 기운이 남아돌아 걸어다니느냐고 죄다들 한두 마디씩 하곤 했었다. 그러던 내가 여러 해 전부터 걷는 일은 하지 않은 것이다. 살도 적당히 쪄서 이제는 누가 보기에 안쓰럽지도 않은 터에 걷는 게 불편해지니 한편으로는 살이 쪄 그런가 맥없이 웃어지기도 했다. 좌우간 그런 까닭에 주차할 마땅한 데가 없으면 거기엔 아예 가지 않고 말았다. 10분 정도만 걸어도 엉치가 결려서 식은 땀이 났고, 가끔은 뻐쩡다리로 걸어야만 했다. 딱히 아프다든지 하진 않았지만 하여간 불편했다. 공기 좋은 오솔길을 산책하는 사치 정도는 아니더라도 하다못해 장을 보는 것이라도 즐겨 걷고 싶었는데 마음과는 달리 개운치 않아 일찌감치 포기하곤 했다. 심지어는 마트에 가서 몇십 분 돌아다니고 나서도 집에 와 널부러졌다. 나이 들어 그런가 보다 슬며시 서럽기도 했고, 사람들은 운동부족으로 체력이 떨어져 그렇다고도 했다. 하지만 거기에 동의할 수 없었던 게, 워낙 발발거리던 사람이니 새삼 무슨 운동부족 운운할 게 아니라,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 해 운동부족이 된 터인데 말이다. 어쨌든 특별히 이렇다 하게 아프지는 않았으니까 다른 의심은 가질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특히 최근 2,3년 사이에 부쩍 더 심해져 의욕상실마저 가져온 듯하다.

그런데 오늘 그 30분 걸음 끝에도 멀쩡한 것을 깨닫고서는, 그게 디스크 때문이었을 거라고 짐작이 간 거다. 쑤시고 아프지는 않았어도 불편했던 것이,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못 했던 것이 디스크가 원인이었을 거란 말이다. 며칠 전 병원에 갔을 때. 아직 심한 편이 아니라고 했으니 그래서 미처 아픔을 느끼지는 못 했던 것이고, 그러나 어딘가 관절이 뒤틀린 듯이 거북스럽고 짓눌린 신경 때문에 발 떼는 것이 껄끄러워 자꾸 걷는 걸 피했던 것이다. 겨우 주사 한 번, 약 몇 봉지로도 이렇게 멀쩡하게 다시 걸을 수 있다니...그 동안 어찌 아무 의심을 하지 않았을꼬. 내가 아직도 멀쩡하게 걸을 수 있다니, 갑자기 등이 곧추 세워졌다.

자, 일단은 급한 불 끈 셈이고, 수술 따위 아직 필요 없다니까 무슨 스트레칭이라든지 하는 것 도움을 받아 계속 지금의 명쾌함을 유지해야 하지 않을까. 아프지 않으면 병원 드나들 일 없다고 의사님도 말했겠다,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할 것을 찾아야 할 텐데. 이 정도로 만족하며 조금씩 더 나빠지길 기다릴 수는 없지 않은가. 몇 걸음 걸은 것만으로도 이렇게 마음이 갰는데, 아직은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더 이렇게 걸어야 하는데 말야. 어디에 상담해야 하는지 좀 찾아봐야 겠다. 에휴, 미련퉁이.

by 暗雲姬 | 2009/07/02 23:52 | 삶..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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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소년 아 at 2009/07/03 10:13
나아지고 계시다니 기쁩니다=D
걸음 좋습니다. 저도 반성하였습니다. 아프지 않고, 더 건강하시어요.
Commented by 暗雲姬 at 2009/07/03 10:38
그럼요.
자기를 아끼고 돌볼 것은 바로 자기 자신밖에 없답니다.
Commented by 난나 at 2009/07/03 11:38
다행이에요. 이유도 모르고 불편하게 지내셨었군요.. 큰 아픔이 오기전까지 몸이 보내는 신호를 모른채 넘어가기 쉽지요.
전에 어떤 방송사였는지, 아마 KBS의 생로병사의 비밀이었던것 같은데 관절에 좋은 스트레칭같은 거나 굉장히 좋은 정보를 많이 알려주던데 디스크 관련 방송이 있었는지는 가물가물하네요. 류머티스 방송이었던 것도 같구요.

하지만 허리근육을 강화시켜서 디스크가 짓눌리지 않게 하는 것은 다리근육강화시켜서 무릎관절 눌리지 않게 하는것과 비슷한 치료라고 생각해요. 한번 찾아보시고 스트레칭으로 걷기의 즐거움을 오래도록 만끽하시길^^
Commented by 暗雲姬 at 2009/07/04 07:26
평소에도 자기 몸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생활습관이 필요할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Commented by 아이 at 2009/07/03 18:27
다행이예요 언니,
몸과 마음은 함께 가는 것 같아요, 둘 다 건강하게 !!!
여름 나자구요^^ 파이팅~!
Commented by 暗雲姬 at 2009/07/04 07:28
뭐, 일단 급한 불을 끈 거니까.
그래서 풀어지면 안 되겠지요?
아이 님도 썩 좋지 않다매...바짝 긴장해서 잘 챙겨요.
마음 편하면 몸도 기운 나니까, 기대하며 지켜볼께요.^^
Commented by Beatriz at 2009/07/03 19:05
우와 너무 잘 되었어요. ^^ 치료 꾸준히 받으셔서 개운한 몸상태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Commented by 暗雲姬 at 2009/07/04 07:28
그러게요.
아침에 일어나 개운하게 허리를 틀 수 있다는 게 이렇게 좋은 건 줄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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