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어쩌라구요

걸핏하면 똥이 무르거나 설사를 잘 하는 막둥이 때문에 상비약을 꽂 갖춰놓고 있는데 지난 주에 다 떨어진 것을 오늘에야 받으러 동물병원에 갔다. 하필 내가 간 때가 제일 복잡한 때였네. 케이지마다 미용 마치거나 기다리는 개들, 링거 맞는 애들로 꽉 차 있고, 대기 중인 강아지 세 마리, 진료실에 한 마리가 있어 썩 넓지 않은 병원에 마땅히 엉덩이 걸칠 데도 없었다. 할 수 없이 막둥이 안은 채 한 구석에 서서 기다렸다. 하나 둘 일을 마치고 떠나서 드디어 의자 하나 났다. 잽싸게 앉아 막둥이를 바닥에 잠시 내려놨다. 계속 안겨 있으면 답답해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앞이 안 보이니까 돌아다니지도 않고 그냥 가만히 서 있는 막둥이. 그 때 막 진료 끝난 개는 아저씨가 데리고 나가고 계산하려고 기다리는 아주머니가 나를 보고 말을 걸어왔다.

- 걔는 나이가 좀 들었나 봐요.
- 네. 좀 많아요.

안쓰러운 눈초리로 막둥이를 보던 아주머니가 다시 한 마디.

- 몇 살이나 됐어요?
- 열일곱 살이예요.

내 대답에 아주머니가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말 끝나기 무섭게 툭 튀어나오는 소리, 바로 내 옆에 앉은 아저씨였다. 푸들 한 마리 안고 있던 그 아저씨가 어찌 그리 빠르게 되받는지.

- 얘 전에 기르던 개가 열일곱 살에 죽었어요.
- ?

그래서 어쩌라구요? 나와 아주머니가 동시에 얼굴이 굳어 버렸는데 그 아저씨는 태연하게 막둥이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 아프지도 않았는데 열일곱 살 되니까 그냥 죽더라구요.

그래서 어쩌라구요오? 당황한 아주머니가 얼굴 가득 웃음을 물고 끼어들었다.

- 어머, 그렇게 안 보여요. 굉장히 건강해 뵈는데요?
- 눈이 안 보이고 냄새도 못 맡지만 나머지는 건강해요. 이도 빠진 게 없는 걸요.
- 어머, 정말 신기하네요. 우리 애는 열 살도 되기 전에 벌써 이가 빠지던데요. 정말 관리를 잘 하셨나 봐요.
- 뭐, 부지런히 닦아준 것밖에는요.
- 우리 언니도 요키를 길렀는데, 걔는 열여덟 살 살고 갔어요. 눈도 안 보이고 치매 때문에 힘들었는데 얘는 아주 건강하네요. 열 살밖에 안 돼 보여요.
- 어차피 사람이건 짐승이건 때 되면 죽는 거지만, 그래도 사는 동안에는 많이 안 아프다 가면 그게 복이지요.

이런 빌어먹을. 이 아저씨가 다시 끼어들어 툭 뱉었다.

- 열일곱 살이라니, 아, 우리 개도 열일곱 살 되니까 딱 죽더라구요.
- 그래서요? 그래서 어쩌라구요? 얘가 열일곱 살 먹었으니까 죽을 거라고 가르쳐주는 거예요? 열일곱 살 먹었으니까 죽어야 된다는 거예요?

목소리를 착 내려깔고 조용조용 대꾸하는 나를 힐끗 보더니 다시 저 할 말 하는, 남의 마음이나 기분은 생각지 못 하는, 사실 그 작자야말로 죽어 마땅할 나이를 쳐잡수셨는지 원.

- 열일곱 살이나 먹었으면 죽어도 아깝지 않지요. 우리 개는 아프지도 않고 병도 없었는데 열일곱 살 되니까 딱 죽더라구요.

졌다. 참 질기다. 치매도 아니고 원. 개가 죽을 나이를 열일곱 살로 딱 맞춰놓고 있는 건가. 보아하니 아직 환갑도 넘기지 않은 멀쩡하게 생긴 남자다. 차림새도 추레하지 않고, 하얀 푸들 한 마리를 무릎에 앉히고 살살 쓰다듬고 있는 폼이 못 돼먹은 구석도 없다. 그런데 고집 좀 있게 생겼다. 그 푸들도 열일곱 살 먹으면 죽을까. 더 살면 어쩌지. 말하는 폼을 보아 안 죽으면 자칫 죽이기라도 할 기세다. 물론 설마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어쩌면 죽은 개를 무척 사랑해서 그 상실을 아직도 쓰리게 곱씹는 사람일 지도 모르겠다. 마치 자기최면처럼 열일곱 살까지 살다 죽었으니, 병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죽었으니 잘 된 거라고 끊임없이 이르는 것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좋게 생각해 그렇게 봐준다 해도, 정작 열일곱 살 먹은 개를 안고 있는 내 앞에서 한 번도 아니고 계속 그 소리를 해야 겠는가. 너그럽게 생각하자 해도 고약한 기분만 고개를 처들었다. 계산을 마친 아주머니는 민망한 표정으로 허둥지둥 도망치듯 나가 버렸다.

- 어허, 네가 열일곱 살이구나. 우리 개도 열일곱 살 먹으니까 그냥 팍 죽데요. 살만큼 산 거지요. 장수한 거지요. 뭐 병도 없었는데 그냥 죽던 걸요.

칵 깨물었으면 좋겠다. 

by 暗雲姬 | 2009/08/31 17:19 | 막둥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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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天U。 at 2009/09/03 11:42
죽어서 아깝지않은 생명이 세상에 어디있다고.. 그 아저씨 참 정말 질기고 무례하네요. 전의 개도, 지금의 푸들도 대체 어떤 생각으로 키우는걸까요...
Commented by 暗雲姬 at 2009/09/03 11:44
심심하니까, 재밌으니까, 장난감 삼아 기르는 사람 많아요.
그 양반도 그저 그런 건가 봐요.
댓거리 할 가치도 없지만, 그래도 듣는 데 정말 짜증이 나더라구요.
Commented by 분홍북극곰 at 2009/09/03 13:11
어쩜 말을 저리 함부로 하신대요,
그정도 나이 먹었으면 할말 못할말 가려가며 해야 하는거 아닌가요
생각이 뭐 그따위로 박혀있대요!
것도 지금 푸들을 안고 있으면서!!!!!!!!!!!!!!
Commented by 暗雲姬 at 2009/09/03 20:00
꼭 나쁜 마음을 먹어서는 아닐 거라 생각해요.
그냥...머리를 도통 안 쓰고 사는 사람이 많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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