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졌다

재인폭포 가자고 들이닥친 동무랑 돌아다니는데 죽어도 조수석 내 무릎 싫다고 마냥 바둥바둥, 정말 한 대 쥐어박고 싶을 지경으로 고집을 부려 애를 먹였다. 무어 불편해 그런가 가능한 모든 것을 헤아려가며, 도중에 길가에 차 세우라 하고는 쉬야도 시켜보고 하릴없이 5분씩 아장아장 산책도 시키는 등 별 거 다했어도 그 고집을 누가 막을까. 가을 햇살 아래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아장거리다가도 차에만 타면 다시 버둥버둥, 뒤에 누나 없다고 아무리 타일러도 꼭 뒤로 가겠다는 데야 어쩌겠는가. 이 녀석이 전에는 스스로 상황 따질 줄 알더니만 앞 안 보이고 귀 어둡고 하니까 그저 제 고집대로만 하겠단다. 아무튼 결국 내가 져서 뒷좌석으로 보내 세워놓고 말았다. 텅 빈 의자에 홀로 대똑 서서야 비로소 꽁알대지 않고 으스대다가 이윽고 양쪽으로 왔다리 갔다리, 만족한다니 됐구나 싶었다. 그러나 한 동안 어찌 버티더니만 그만 뚝 떨어진 거다. 급정거도 아니었고 커브길도 아니었는데, 그냥 제가 잘못 디뎌 바닥으로 추락한 것. 우리한테는 겨우 종아리 높이지만 작은 개한테는 제 키를 넘는 높이, 보이지 않으니 저에게 유리하게 균형을 잡아 떨어질 수도 없어 무작정 똑 떨어졌을 것. 갑자기 깨갱 우는 소리에 놀라서 돌아보고 나동그라진 놈을 안아드니까 깽깨갱 저 죽는다고 입 딱 벌리고 한참을 울었다. 한참을 달래고 어쩌고 하는데도 성질이 단단히 났는지 눈이 위로 쪽 찢어져서 무릎 위에 버티고 서 있는 고집이라니.

차에서 내려 구경하느라 걷고 어쩌고, 다시 타고 다른 데로 이동해 또 다른 구경을 하고...그런데 안아들며 어딘가에 닿기만 하면 죽는다고 우는 거라. 꼭꼭 눌러보아도 멀쩡, 살살 잡아당겨도 멀쩡, 그런데 안으면 깨갱, 아이 참 답답하네. 동무는, 어디 아프냐고 물어라, 대답하라고 다그쳐라, 이런 억지를 쓰지, 나 참. 걸려보면 저는 데는 없다. 한참 요기조기 조물거리다 보니까 아무래도 왼쪽 무릎을 부딪힌 게 아닌가 싶은데, 그래도 걷는 게 멀쩡한 걸 보면 뼈를 다친 건 아니고 그냥 타박상 정도일 것 같다. 워낙 꾀병이 심한데다 제 뜻대로 되지 않아 잔뜩 성이 나 있는 터라서 더 엄살을 떠는 건지도 모르겠다.

돌아오면서 집 근처 밥촌에 칼국수를 먹으러 갔다. 언젠가 우연히 그 집에 갔었는데 너무 맛있다고 진작부터 나더러 먹으러 가자는 걸 번번이 거절했었다. 원래 맛있는 거 찾아다니며 먹는 성질이 아니라서 일부러 그 골짜기까지 가는 것 귀찮다고 했던 것이다. 몇 주 전에도 다른 동무를 하나 태우고 저희 집에서 두 시간을 달려와 그거 먹으러 갔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 기다리지 못 하고 그냥 돌아섰다고 거듭 서운해 했었다. 두 시간 달려오는 열정이 있는 사람더러, 바로 근처에 살면서도 싫다고만 하던 내가 오늘은 꼼짝없이 잡혀가고 말았다. 그런데...그렇게나 읊어대던 칼국수집에 갔더니 개는 절대 들일 수 없다고 하지 않는가. 저녁 7시면 문을 닫는다는 거기는, 평일 6시 그 시각엔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도 종업원 아주머니는 도리도리도리. 나 같으면, 아니 내 다른 그룹 동무들 같으면 그냥 핑 돌아서 오겠구만 이 동무는 그거 꼭 먹어야 한다 우기니...고집 세기로 말하면 개와 다를 게 하나 없다.

동무가 제안한 게, 막둥이 혼자 차에 두라는 것.
- 걔, 그렇게 혼자 두면 자칫 혀 깨물고 자살할 지도 모르는데.
과보호 어쩌구 쟁쟁, 에구 듣기싫어. 어쨌든 우리 동네에 와서 종일 기사노릇(내가 시켰나, 제가 좋아 한 거지) 했으니 그렇게 노래 불러대던 칼국수는 먹게 해줘야 할 것인데. 혹시 또 의자에서 떨어질까 봐 널널한 뒷자리 바닥에 세워놓고 칼국수집에 들어가 앉았다. 맛에 대해서야...동무와 거기 종업원 아주머니한테는 예의상 맛있다 어쩌구 했지만, 사실은 전혀 맛을 몰랐다는 것. 신경이 차로만 가 있는데 어쩌겠는가. 죽이 나오니 훌훌 뜨고, 도토리묵 나오니 또 몇 가닥 먹고, 콩비지 나오길래 거기에 밥 한 숟가락 비벼먹고, 도토리전 나온 것도 한쪽 쭉 찢어먹고, 드디어 대망의 칼국수 나와서 그도 몇 가닥 호루룩거리고, 감자떡 나온 것도 동무가 밀어주어서야 먹고.
- 아주머니, 일회용 그릇 있나요. 하나만 주세요.
거기에 칼국수 남은 것 건져담았다. 울 막둥이가 국수를 어지간히 좋아해야 말이지. 동무는 아직 앉아 뭉기적대는데 나는 국수 담긴 그릇 들고 후딱 나왔다. 이런 이런, 분명히 아래 세워놨는데 혼자 깡총 의자 위에 올라가 부들부들 떨며 서 있네. 도움닫기 하기에는 좁은 차 안, 보이지 않는 눈으로 높이나 거리를 가늠할 수 없으니 의자로 뛰어오르는 것도 쉽지는 않았을 터. 몇 번이나 의자를 긁어대며 매달려 간신히 올랐을까 상상하자니 눈물이 핑 돌았다. 녀석 열일곱 해 생애 중에 그렇게 막막하게 혼자 버려진 건 처음이었을 것이다. 얼른 안아내리고 토닥토닥 머리를 두들겨도 반응이 없다. 그래도 칼국수를 주니까 맛있게 냠냠, 안 먹겠다고 버티면 어쩌나 했더니 그건 아니어서 안심했다. 저리 잘 먹는 걸 더 남겨올 걸. 그렇다고 요놈이 엄니를 용서한 건 아냐.

나를 집에 내려놓고, 퇴근시간 무렵이어서 많이 막힐 거라 걱정을 하면서 동무는 그 자리에서 떠났다. 녀석은 화장실도 다녀오고 밥도 몇 알 먹고...눕지도 않고 집안을 곳곳이 돌아다녔다. 낮 동안 떠나 있던 게 아쉬운 듯 보이는 그런 행동은, 거의 매일 나가면서도 오늘 처음 보았다. 아무래도 단단히 성이 난 게 틀림없다. 동무 떠나고 45분 지나 돌아온 딸내미-누나 목소리를 듣자마자 버둥대며 덤벼들어서는 턱 아래에 제 머리를 처박고 꾸웅 구슬프게 한 마디, 그리고는 계속 계속 앓는 소리를 내면서 얼굴을 핥아대는 거라.
-엄니, 무슨 일 있었어요? 얘가 왜 이렇게 뭘 일러요?
도리 있나.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이실직고할 밖에. 저 녀석은 이르는 데는 선수다. 누나 없는 동안 내가 야단치거나 병원 데리고 가 주사를 맞추거나 하면 영락없이 누나한테 미주알 고주알 일러바친다. 오늘은 유난히 서러운 태를 낸다.
- 어휴, 그래서 화 났어? 어어, 아팠어? 에구, 가엾어.
참...눈물 없이는 못 보는 오누이 상봉과 고자질 현장이다. 그런데 언제쯤 내게 맺힌 마음을 풀까.
- 내가 그런 거 아냐. 이모가 못 된 거라구.
두 시간이나 지난 지금도 절대로 내 곁에 오지 않고 있는 중이다.

by 暗雲姬 | 2009/10/06 21:30 | 막둥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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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늑대별 at 2009/10/06 21:55
이런...막둥이가 오늘 고생도 하고 떼도 많이 썼군요. 그래놓고는 혼자 삐졌으니...내일이면 풀어지려나요?...ㅎㅎ
Commented by 暗雲姬 at 2009/10/06 22:28
그래야 할 텐데요.
요즘은 전보다 더 오래 가서요...
Commented by LaJune at 2009/10/07 08:59
..............워째 떼고집이 저희 서준일 보는거 같습니다. 요즘 떼가 무진장 늘었어요. ㅠ_ㅠ
Commented by 暗雲姬 at 2009/10/07 09:57
헉! 저건 할배 고집인데...
Commented by 暗雲姬 at 2009/10/07 09:58
준이는 지금 아마 미운 일곱 살 맞죠?
Commented by LaJune at 2009/10/07 18:58
일곱살 근처예요. 여섯살. 일곱살이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ㅁ;
Commented by 暗雲姬 at 2009/10/07 19:03
아들 키우는 사람들 보니까, 딸 키운 나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무시무시하던데.
이제 아들 키우는 참맛을 볼 것이구만요.^^
그런데 그 맛이 또 진국이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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