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14일
눈 감아 보자
아이가 모처럼 훤한 대낮에 돌아온댔다. 갈수록 일찌감치 어두워지기도 하려니와 9교시까지 빼곡하게 들어찬 날이 대부분인데다 어쩌다 하루 이르게 끝나도 과제 하느라 그 시각에 떠날 수도 없었기 때문에 낮 귀가는 참 신기한 일이었다. 막둥이를 안고 나서려니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누나 온대, 데리러 가자. 어두운 귀로도 누나 목소리쯤 들리면 좋아 어쩔 줄 모르는 녀석한테 그렇게 이르다가 아차 했다. 만날 컴컴할 때 데리러 나가다가 훤할 때 나가면서 누나 온다 해봤자 소리 구별이나 하지 세세한 건 못 알아듣는 녀석한테 하나마나지. 버스정류장으로 가려고 왼편으로 돌아서는데 막둥이가 몸을 곧추 세웠다. 어라, 정류장인 줄 아나 보네. 그러고 보니 조금 아까 아차 한 것이 사실은 내가 보다 더 미련했던 거라고 퍼뜩 깨달았다. 귀 어두운 건 생각하면서 빛 구별이 안 되는 건 왜 생각하지 않았는지 말이다. 즉 어두우나마 약간은 들을 수 있는 귀와 밝고 어두운 것조차 구별할 수 없는 눈을 바꿔 생각한 것이다. 안 보인다는 것을 잊지는 않았으면서도 밤낮 구별도 못 한다는 것까지 미처 떠올리지 못 한 것. 그러니까 녀석한테 신기한 배꼽시계가 있다면 모를까, 누나 올 시각인지 아닌지는 모를 것이다. 그런데도 차 기울기, 도로의 미세한 요철이나 흔들림, 우리는 결코 모를 주변 공기의 흐름 따위로 누나 데리러 정류장에 왔구나 짐작하는 걸 보면 신기하다. 버스 올 때까지 다소곳하게 무릎에 앉아 있던 녀석이 뒷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허둥거리며 뒷좌석으로 가려고 돌진하다 깨갱 울었다. 얼른 번쩍 들어 딸애에게 건네줬더니 사정없이 온 얼굴을 핥아댔다.
저녁밥 먹고 설거지하고 거실에 털썩 앉아 잠시 TV를 보았다. 아니 잠시가 아니라 아마 30분 쯤 보았던 것 같다. 문득 옆자리가 허전했다. 그러고 보니까 집에 들어서서부터 막둥이가 내 곁에 있었던 적이 없다. 누나가 데리고 있나 끄응 몸을 일으켜 서재를 들여다 보았지만, 딸내미는 레포트 쓰느라고 정신이 없다. 무릎 위에도 의자 뒤에도 옆의자에도 막둥이가 없다. 얘가 어딨지...서재에서 나오다 딱 멈췄다. 저만치 화장실 앞, 그것도 벽을 보고 서 있는 막둥이 뒷모습. 언제부터 저렇게 서 있었던 걸까. 아마 밥 먹고나서 죽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밥 먹을 때 녀석에게도 밥을 줘서 맛있게 먹는 걸 봤다. 그 다음에는...생각이 안 난다. 나는 설거지, 딸은 레포트, 그렇게 흩어지면서 그만 막둥이를 둘 다 깜빡 잊었던 것이다. 그러니 저는 밥 먹고 돌아서 몇 걸음 걷다가 우연히 벽과 마주치자 어디로 갈 바를 몰라 그렇게 서 있었던 게다. 가끔 있는 일이다. 그 때마다 안아서 조금만 옮겨주면 비로소 발바닥에 느껴지는 감촉이 익숙한지 이쪽으로 몇 걸음 저쪽으로 몇 걸음 우왕좌왕 하면서도 제가 갈 데를 찾아나서곤 한다. 지금도 바로 그 몇 걸음 익숙한 바닥을 찾지 못 해 얼어붙어 버렸을 텐데, 그렇게 서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단순히 막막하고만 말았을까, 왜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까 이상스러웠나, 관심없음이 원망스러울까, 그 꼴이 된 스스로를 민망해 하고 좌절해 있을까...마음이 아코데언처럼 착착착 접히면서 털퍽 주저앉았다. 무릎걸음으로 막둥이에게 기어가 당겨안으니 꾸웅 슬픈 소리를 내며 가슴에 기대 머리를 내 턱 아래 집어넣고 살살 비볐다. 미안하다...
잠시 토닥토닥하다가 소파에 재워놓고 눈을 감았다. 어떤 세상일까. 해가 눈부신 건 질색을 하는 나지만 이렇게 완벽하게 깜깜한 것이 하염없이 지속된다는 게 쉽게 견딜 일 아니다. 더구나 막둥이는 작으니까 우리 무릎 아래 있다. 보이고 들리지는 않아도 끊임없이 어떤 움직임이 제 머리보다 훨씬 높은 데서 진행되고 있을 터, 그게 얼마나 불안할까 막연하게 상상을 했다. 눈을 감으니까...걸을 때야 발과 무릎이 제일 신경이 쓰였다. 손을 휘휘 저어 앞을 확인하려는 것도 대개 허리 아래 높이다. 그러나 제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으니까 위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더 예민했다. 형광등 안정기가 지잉 울리는 소리, 낮 동안 볕에 달궈져 늘어났던 벽이 어둠 속에서 제자리를 찾는지 쩡쩡 울리는 소리, 심지어는 철 늦은 파리 한 마리 나는 소리마저 오싹 무섬증으로 덤벼들었다. 쟤는 일 년 반이나 이러고 살고 있구나. 더구나 일 년이 지나서는 개한테 시력보다 더 예민하다는 후각과 청력마저 잃고서 사는 중이다. 간혹 나를 난감하게 하는 고집, 부릴 만하겠다 싶다. 더듬거리다 무릎 한 번 박고, 돌아서다 어깨를 벽에 박았다. 눈을 뜨면 안 돼, 이렇게 혼자 이르면서 조금 더 걷다가 그만 울고 싶어졌다.
이쁜 표정으로 자고 있다. 전에는 꼭 감고 자던 눈을, 안 보이기 시작하면서 반쯤 뜨고 잔다. 처음에는 안 자는 줄 알았는데 자는 습관이 바뀐 것이었다. 그렇게 눈 뜨고 자면 꿈에는 세상이 보일까. 그래서 자다가 일어나면 그렇게 눈을 비비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꿈마다 보면 엄니 얼굴 누나 얼굴 안 잊어 버리겠지. 녀석 옆에 앉아서 다시 눈을 감아본다. 눈을 감아도 이쁜 녀석은 훤히 보인다.
저녁밥 먹고 설거지하고 거실에 털썩 앉아 잠시 TV를 보았다. 아니 잠시가 아니라 아마 30분 쯤 보았던 것 같다. 문득 옆자리가 허전했다. 그러고 보니까 집에 들어서서부터 막둥이가 내 곁에 있었던 적이 없다. 누나가 데리고 있나 끄응 몸을 일으켜 서재를 들여다 보았지만, 딸내미는 레포트 쓰느라고 정신이 없다. 무릎 위에도 의자 뒤에도 옆의자에도 막둥이가 없다. 얘가 어딨지...서재에서 나오다 딱 멈췄다. 저만치 화장실 앞, 그것도 벽을 보고 서 있는 막둥이 뒷모습. 언제부터 저렇게 서 있었던 걸까. 아마 밥 먹고나서 죽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밥 먹을 때 녀석에게도 밥을 줘서 맛있게 먹는 걸 봤다. 그 다음에는...생각이 안 난다. 나는 설거지, 딸은 레포트, 그렇게 흩어지면서 그만 막둥이를 둘 다 깜빡 잊었던 것이다. 그러니 저는 밥 먹고 돌아서 몇 걸음 걷다가 우연히 벽과 마주치자 어디로 갈 바를 몰라 그렇게 서 있었던 게다. 가끔 있는 일이다. 그 때마다 안아서 조금만 옮겨주면 비로소 발바닥에 느껴지는 감촉이 익숙한지 이쪽으로 몇 걸음 저쪽으로 몇 걸음 우왕좌왕 하면서도 제가 갈 데를 찾아나서곤 한다. 지금도 바로 그 몇 걸음 익숙한 바닥을 찾지 못 해 얼어붙어 버렸을 텐데, 그렇게 서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단순히 막막하고만 말았을까, 왜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까 이상스러웠나, 관심없음이 원망스러울까, 그 꼴이 된 스스로를 민망해 하고 좌절해 있을까...마음이 아코데언처럼 착착착 접히면서 털퍽 주저앉았다. 무릎걸음으로 막둥이에게 기어가 당겨안으니 꾸웅 슬픈 소리를 내며 가슴에 기대 머리를 내 턱 아래 집어넣고 살살 비볐다. 미안하다...
잠시 토닥토닥하다가 소파에 재워놓고 눈을 감았다. 어떤 세상일까. 해가 눈부신 건 질색을 하는 나지만 이렇게 완벽하게 깜깜한 것이 하염없이 지속된다는 게 쉽게 견딜 일 아니다. 더구나 막둥이는 작으니까 우리 무릎 아래 있다. 보이고 들리지는 않아도 끊임없이 어떤 움직임이 제 머리보다 훨씬 높은 데서 진행되고 있을 터, 그게 얼마나 불안할까 막연하게 상상을 했다. 눈을 감으니까...걸을 때야 발과 무릎이 제일 신경이 쓰였다. 손을 휘휘 저어 앞을 확인하려는 것도 대개 허리 아래 높이다. 그러나 제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으니까 위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더 예민했다. 형광등 안정기가 지잉 울리는 소리, 낮 동안 볕에 달궈져 늘어났던 벽이 어둠 속에서 제자리를 찾는지 쩡쩡 울리는 소리, 심지어는 철 늦은 파리 한 마리 나는 소리마저 오싹 무섬증으로 덤벼들었다. 쟤는 일 년 반이나 이러고 살고 있구나. 더구나 일 년이 지나서는 개한테 시력보다 더 예민하다는 후각과 청력마저 잃고서 사는 중이다. 간혹 나를 난감하게 하는 고집, 부릴 만하겠다 싶다. 더듬거리다 무릎 한 번 박고, 돌아서다 어깨를 벽에 박았다. 눈을 뜨면 안 돼, 이렇게 혼자 이르면서 조금 더 걷다가 그만 울고 싶어졌다.
이쁜 표정으로 자고 있다. 전에는 꼭 감고 자던 눈을, 안 보이기 시작하면서 반쯤 뜨고 잔다. 처음에는 안 자는 줄 알았는데 자는 습관이 바뀐 것이었다. 그렇게 눈 뜨고 자면 꿈에는 세상이 보일까. 그래서 자다가 일어나면 그렇게 눈을 비비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꿈마다 보면 엄니 얼굴 누나 얼굴 안 잊어 버리겠지. 녀석 옆에 앉아서 다시 눈을 감아본다. 눈을 감아도 이쁜 녀석은 훤히 보인다.
# by | 2009/10/14 15:17 | 막둥 | 트랙백 | 덧글(2)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미소가 나오다가 또 코끝이 찡해지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한번 누우면 새벽까지 꼼짝않고 자는 뽀삐가 야밤에 일어나 갑자기 안절부절 못하는 통에 같이 깨어나 잠이 다 달아난 터라 더 마음에 와닿는 것 같아요.
인간보다 네 배 빠른 속도로 세월을 달려가는 뽀삐를 보면서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서 또 하루하루가 소중하다는 걸 배우고 있기는 한데... 그래도 언젠가 올 이별이 아직은 너무나 두렵네요.
저희 뽀삐도 꼬실이만큼은 살아주면 좋겠고 또 꼬실이도 오래오래 함께 있어서 근황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름다운 글 읽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그러나 함께 보낸 시간이 행복했으면 그것으로 슬픔을 견뎌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만...아직 겪지 않았으니 자신이 없네요.
하루하루가 소중합니다.
뽀삐도 건강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