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05일
같이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어제 EBS의 다큐프라임 '인간과 고양이' 2부 '고양이 전쟁'을 보았다. 고양이 밥 주는 사람과 그걸 반대하는 사람과의 다툼에서 끝내 칼부림 살인까지 벌어진 최근의 일본 사건을 보면서, 우리 사회보다는 고양이에 대해 후한 인심이라고 알고 있는 일본에서도 그런 무서운 일이 있었구나 놀랐다. 하긴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느 곳을 막론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 그렇게 다양한 의견과 다양한 사건들이 벌어지는 게 하등 이상할 건 없겠다. 일본이라고 해서 고양이 싫어하고 길고양이라면 죄다 죽여도 좋겠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왜 없겠는가.
하지만 일부에서 벌어지는 일이 그렇다 하더라도 사회 전반적 분위기로써 그 사회를 판단하게 마련이다. 일본 사회에서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고 적절한 해결방법을 찾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부러웠다.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모습을 거의 볼 수 없다는 것 때문에라도 그들의 모습은 더 빛나 보였다. 고양이를 좋아하고 싫어하고, 길고양이를 안쓰럽게 여기거나 무섭고 불결하게 여기고, 겨우 그런 취향의 차이를 가지고 서로 원수로 살 필요는 없지 않겠나. 내가 좋아하는 것일지라도 상대가 싫어한다면 조금 자제해야 할 것이며, 반대의 경우에도 내 의견과 상대의 의견을 골고루 충족시킬 방법을 찾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내가 볼 수 있는 건, 무조건 나만 옳다, 나를 따르라 뿐이다.
10년 쯤 전이었다. 입맛이 통 없어 굶기를 밥 먹듯 하던 어느 날, 국밥이라도 한 그릇 먹으면 살 것 같을 거란 생각으로 어느 국밥집을 찾았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 개를 데리고 가기 때문에 들어서기 전에 미리 주인에게 묻는 것이 생활화 되어 있고, 다른 손님을 생각해서 가능하면 사람이 적을, 즉 밥때를 피해서 가곤 한다. 우리 막둥이는 체구도 작고(2키로도 안 된다), 내 무릎에 엎뎌 있는 것 외에는 절대로 꼼짝도 하지 않는 아이라서, 어디에 가서도 거기 개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눈치채지도 못 한다. 아무튼 그 날도 우리는 식당 안을 기웃거리고는 반갑게 맞는 주인에게 개를 데리고 왔다고 알렸다. 괜찮아요, 사람도 거의 없어요, 이러면서 안내를 한 주인. 신을 벗고 올라서게 되어 있는 넓은 홀에는 딱 한 사람, 몸일을 하는 노동자 쯤으로 보이는 마흔 가량 남자만 있었다. 막둥이는 내 옷 속에 들어가 얼굴만 밖으로 내민 상태였다. 숟가락질을 하던 남자가 우리를 보자마자 갑자기 "에이 썅!"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를 집어던졌다. 홀 저쪽 구석으로부터 반짝이며 날아온 건 뾰족한 젓가락이었다. 그건 바로 내 가슴께에서 아래로 뚝 떨어졌다. 오싹했다. 가슴에 안겨 있는 막둥이 얼굴 부근, 그리고 나한테 바짝 붙어 서 있던 초등학교 3학년 딸아이 눈 가까이였다. 만약 그것이 2,3센티만 더 날아왔더라면 막둥이나 딸 둘 가운데 하나는 다쳤을 것이다. 그건 살인미수였다. 놀란 애는 털썩 주저앉았고, 나는 무서움보다는 화가 먼저 치밀었다. 한 발 앞으로 내디디려는 순간 부엌에서 주인이 쏜살같이 달려나와 다짜고짜 남자 어깨를 잡아 일으켰다. 남자가 고함을 쳤다. 자기가 밥을 먹고 있는데 감히 개새끼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남자보다 더 크게 소리를 지른 것은 주인이었다. 만약 그 젓가락에 누구 하나라도 맞았다면 당신은 살인죄로 잡혀갈 것이라고. 그러면서 주인은 남자를 잡아끌어 밀어냈다. 주인이 한 말이 안 잊혀진다. 당신이 개가 싫어 못 들어오게 하고 싶다면 개를 좋아하는 사람은 당신을 못 들어오게 하고 싶을 거라고. 당신 같은 사람은 필요없으니 당장 나가라며 돈도 안 받고 문 밖으로 쫓아냈다. 잠시 후 우리만 남아서 주인이 가져다주는 국밥을 받으며, 개를 기르시는가고 물었다. 전에 마당에 묶어놓고 기르던 개는 있었지만 지금은 기르지 않는다고, 자기도 개를 썩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싫어하는 사람이 싫어한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처럼 좋아하는 사람도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권리가 있는 게 아니겠냐고 되묻던 주인. 맞다. 세상 사람이 다 그렇게 생각할 줄 안다면 좀 좋겠는가.
나는 지금도 그 주인 아저씨 말을 종종 생각한다. 개나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무슨 죄인인 듯, 사회에 어떤 해를 끼치는 듯 울타리 안에 모여서 소근대고, 싫어하는 사람들은 거리나 건물이나 다 자기들만의 것인 양 당당하다. 짐승 편을 드는 사람들은 그 작은 짐승들이 그나마 강제로 잡혀 죽임을 당하게 하지 않으려고 그들의 눈치를 살피며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쩔쩔매며 살아간다. 적어도 그 문제에 한해서만은 절대로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 만약 싫어하는 것이 좋아하는 것보다 우위에 있다면, 아저씨 말처럼, 나도 그런 사람들 싫으니까 당신들은 집에 박혀서 끽소리도 말고 엎드리쇼, 해야 되는 게 아닐까. 지금 이 현상은 큰 모순이다.
우리 동호회 아우는 기르는 개들을 자기 아들보다 더 끔찍하게 위한다. 아들이야 먹고 싶은 것 찾아 먹을 수 있지만 개는 일일이 갖다 주어야 먹는다고, 자기들 뜻대로 할 수 없이 사람이 해주는 것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그 목숨이 가엾다고 생각하는 이다. 개를 안고 나가면 지나는 사람들이 개팔자가 상팔자라고 할 때가 제일 싫단다. 그러면 그 상팔자 대로, 어디 마음대로 가지도 못 하고 누가 끄는 대로 가방에 담겨 살아가고 싶은가고 묻는다. 아우의 언니는 개가 근처에 오는 것도 싫어하는 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이 있어도 절대로 동생 집안에 발을 들여놓지 않고 바깥에서 만나 볼 일을 보든가 동생더러 자기네 집으로 오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두 자매가 원수가 되어 살지 않고, 개를 좋아하는 동생을 인정하고 개를 싫어하는 언니를 인정하며 웃고 놀린다. 그렇게 살면 되는 것이다.
고기만이 힘을 준다고 믿는 사람과 채식주의자가 같은 밥상에서 밥을 먹는 게 이상한가. 채식주의자 젓가락이 고기에 가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런 간단한 이치를 왜 무시하려고 하는 걸까.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들 집 근처에는 고양이가 디디기 힘든 발판을 깔아 서로의 취향과 권리를 인정해주는 일본 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왜 우리는 그럴 수 없는지 슬펐다. 딱히 개와 고양이를 돌보는 문제만이 아니다. 떠돌이 짐승을 대하는 태도에서 기타 다른 문제와 생각과 행동을 돌아볼 수 있다. 나와 생각이나 생김이나 취향이 다르다고 해서 그것을 죄악시하는 건 옳지 않다. 저들 딴에는 보편적이라고 주장하기는 하나, 보편적이지 않아 죄가 될 리는 없다. 깊게 생각해볼 일이다.
하지만 일부에서 벌어지는 일이 그렇다 하더라도 사회 전반적 분위기로써 그 사회를 판단하게 마련이다. 일본 사회에서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고 적절한 해결방법을 찾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부러웠다.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모습을 거의 볼 수 없다는 것 때문에라도 그들의 모습은 더 빛나 보였다. 고양이를 좋아하고 싫어하고, 길고양이를 안쓰럽게 여기거나 무섭고 불결하게 여기고, 겨우 그런 취향의 차이를 가지고 서로 원수로 살 필요는 없지 않겠나. 내가 좋아하는 것일지라도 상대가 싫어한다면 조금 자제해야 할 것이며, 반대의 경우에도 내 의견과 상대의 의견을 골고루 충족시킬 방법을 찾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내가 볼 수 있는 건, 무조건 나만 옳다, 나를 따르라 뿐이다.
10년 쯤 전이었다. 입맛이 통 없어 굶기를 밥 먹듯 하던 어느 날, 국밥이라도 한 그릇 먹으면 살 것 같을 거란 생각으로 어느 국밥집을 찾았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 개를 데리고 가기 때문에 들어서기 전에 미리 주인에게 묻는 것이 생활화 되어 있고, 다른 손님을 생각해서 가능하면 사람이 적을, 즉 밥때를 피해서 가곤 한다. 우리 막둥이는 체구도 작고(2키로도 안 된다), 내 무릎에 엎뎌 있는 것 외에는 절대로 꼼짝도 하지 않는 아이라서, 어디에 가서도 거기 개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눈치채지도 못 한다. 아무튼 그 날도 우리는 식당 안을 기웃거리고는 반갑게 맞는 주인에게 개를 데리고 왔다고 알렸다. 괜찮아요, 사람도 거의 없어요, 이러면서 안내를 한 주인. 신을 벗고 올라서게 되어 있는 넓은 홀에는 딱 한 사람, 몸일을 하는 노동자 쯤으로 보이는 마흔 가량 남자만 있었다. 막둥이는 내 옷 속에 들어가 얼굴만 밖으로 내민 상태였다. 숟가락질을 하던 남자가 우리를 보자마자 갑자기 "에이 썅!"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를 집어던졌다. 홀 저쪽 구석으로부터 반짝이며 날아온 건 뾰족한 젓가락이었다. 그건 바로 내 가슴께에서 아래로 뚝 떨어졌다. 오싹했다. 가슴에 안겨 있는 막둥이 얼굴 부근, 그리고 나한테 바짝 붙어 서 있던 초등학교 3학년 딸아이 눈 가까이였다. 만약 그것이 2,3센티만 더 날아왔더라면 막둥이나 딸 둘 가운데 하나는 다쳤을 것이다. 그건 살인미수였다. 놀란 애는 털썩 주저앉았고, 나는 무서움보다는 화가 먼저 치밀었다. 한 발 앞으로 내디디려는 순간 부엌에서 주인이 쏜살같이 달려나와 다짜고짜 남자 어깨를 잡아 일으켰다. 남자가 고함을 쳤다. 자기가 밥을 먹고 있는데 감히 개새끼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남자보다 더 크게 소리를 지른 것은 주인이었다. 만약 그 젓가락에 누구 하나라도 맞았다면 당신은 살인죄로 잡혀갈 것이라고. 그러면서 주인은 남자를 잡아끌어 밀어냈다. 주인이 한 말이 안 잊혀진다. 당신이 개가 싫어 못 들어오게 하고 싶다면 개를 좋아하는 사람은 당신을 못 들어오게 하고 싶을 거라고. 당신 같은 사람은 필요없으니 당장 나가라며 돈도 안 받고 문 밖으로 쫓아냈다. 잠시 후 우리만 남아서 주인이 가져다주는 국밥을 받으며, 개를 기르시는가고 물었다. 전에 마당에 묶어놓고 기르던 개는 있었지만 지금은 기르지 않는다고, 자기도 개를 썩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싫어하는 사람이 싫어한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처럼 좋아하는 사람도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권리가 있는 게 아니겠냐고 되묻던 주인. 맞다. 세상 사람이 다 그렇게 생각할 줄 안다면 좀 좋겠는가.
나는 지금도 그 주인 아저씨 말을 종종 생각한다. 개나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무슨 죄인인 듯, 사회에 어떤 해를 끼치는 듯 울타리 안에 모여서 소근대고, 싫어하는 사람들은 거리나 건물이나 다 자기들만의 것인 양 당당하다. 짐승 편을 드는 사람들은 그 작은 짐승들이 그나마 강제로 잡혀 죽임을 당하게 하지 않으려고 그들의 눈치를 살피며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쩔쩔매며 살아간다. 적어도 그 문제에 한해서만은 절대로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 만약 싫어하는 것이 좋아하는 것보다 우위에 있다면, 아저씨 말처럼, 나도 그런 사람들 싫으니까 당신들은 집에 박혀서 끽소리도 말고 엎드리쇼, 해야 되는 게 아닐까. 지금 이 현상은 큰 모순이다.
우리 동호회 아우는 기르는 개들을 자기 아들보다 더 끔찍하게 위한다. 아들이야 먹고 싶은 것 찾아 먹을 수 있지만 개는 일일이 갖다 주어야 먹는다고, 자기들 뜻대로 할 수 없이 사람이 해주는 것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그 목숨이 가엾다고 생각하는 이다. 개를 안고 나가면 지나는 사람들이 개팔자가 상팔자라고 할 때가 제일 싫단다. 그러면 그 상팔자 대로, 어디 마음대로 가지도 못 하고 누가 끄는 대로 가방에 담겨 살아가고 싶은가고 묻는다. 아우의 언니는 개가 근처에 오는 것도 싫어하는 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이 있어도 절대로 동생 집안에 발을 들여놓지 않고 바깥에서 만나 볼 일을 보든가 동생더러 자기네 집으로 오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두 자매가 원수가 되어 살지 않고, 개를 좋아하는 동생을 인정하고 개를 싫어하는 언니를 인정하며 웃고 놀린다. 그렇게 살면 되는 것이다.
고기만이 힘을 준다고 믿는 사람과 채식주의자가 같은 밥상에서 밥을 먹는 게 이상한가. 채식주의자 젓가락이 고기에 가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런 간단한 이치를 왜 무시하려고 하는 걸까.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들 집 근처에는 고양이가 디디기 힘든 발판을 깔아 서로의 취향과 권리를 인정해주는 일본 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왜 우리는 그럴 수 없는지 슬펐다. 딱히 개와 고양이를 돌보는 문제만이 아니다. 떠돌이 짐승을 대하는 태도에서 기타 다른 문제와 생각과 행동을 돌아볼 수 있다. 나와 생각이나 생김이나 취향이 다르다고 해서 그것을 죄악시하는 건 옳지 않다. 저들 딴에는 보편적이라고 주장하기는 하나, 보편적이지 않아 죄가 될 리는 없다. 깊게 생각해볼 일이다.
# by | 2009/11/05 13:57 | 생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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