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7월 04일
잔뜩 부었네
동호회 아우가 지난 주 어느 밤에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가 강아지에 대한 방송 예고를 봤다며 잊지 않고 보겠노라 매일 염불하듯 되뇌었다. 무언지 몰라도 강아지에 관한 것이라니까 나도 덩달아 봐야지 하고는, 그 시간 가까워지자 일찍 잠드는 새나라의 어른이 깨 있나 확인하기 위해 메세지를 보냈더니, "졸려서 일어나 설거지 했슈" 하는 답. 그렇게 우리가 강아지에 관해 볼 거라고 말하자 딸애는 볼까 말까 잠시 망설였다. 며칠 건들지 못 한 셈틀을 켜고 싶은 것이었다. 그런데 광고 전에 Next 하며 나온 제목이 '노견만세'. 막 머리 감고 나와 드라이어로 말리던 아이 손길이 바빠졌다. "이건 꼭 볼 거예요."
두 달 전인가, 동호회 처녀가, MBC에서 스페셜 기획하는 게 노견에 관한 것이던데 제보자 찾더라고 연락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었다. "쟤만 출연한다면 모를까 나도 출연하는 건 싫어서" 하고 킥킥 웃는 옆에서 딸내미가 그랬다. "쟨 눈 빼면 노견이라는 생각이 안 들어서 적합하지 않다 할 걸요." 사랑에 눈이 먼 우리는 "맞아, 그래, 정말이야, 쟬 누가 노인네로 보겠니..." 등등 이렇게 왁자하게 웃고 넘겼었다. 이게 바로 그 프로그램인 모양이다.
길지 않은 시간, 화면에 나오는 그 애들은 신기하게도 우리 막둥이와 같은 나이들이다. 그러면 우리 애가 최고령선에 있다는 말이네. 몹시 노쇠하고 병 들고 치매에 종양에 염증에 시달리면서 입맛도 잃고 시력도 잃어 버린 착한 동물들,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서 어쩌면 자기네 본능을 많이 포기하거나 잃어야 했던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최후까지 책임과 사랑을 다하는 성실한 사람들...살아 있다는 것, 서로 존재를 느낀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었고 이윽고 사랑으로 풍요로웠던 기억을 공유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게다.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울 때만 사랑한다는 것은 목숨이건 뭐건 그저 장난감 정도로나 여기는 것이고, 병 들고 늙고 추해져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함께 삶을 걸어가는 동료로,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 부모가 사위어가는 것을 보며 안타깝기는 했어도 그것이 지저분하다 싫다 하지는 않았듯이. 상대가 부모가 아니라서, 사람이 아니라서, 개라서 그 감정이 다르다면 그야말로 '애완견'이었을 뿐 '반려견'으로 안았던 게 아니었겠지.
훌쩍 코를 들이마시는가 했더니 벌떡 일어난 딸애가 화장지를 통째 가져왔고, 그 때부터 우리 둘은 번갈아 뽑아가며 훌쩍 팽 울고 풀고 난리가 났었다. 비스듬히 누워 있는 내 배 위에 또아리를 틀고 자는 막둥이 녀석을 틈틈이 쓰다듬을 때마다 녀석은 방해 받아 귀찮다는 듯 머리를 젓고 살짝 돌아눕곤 했다. "엄니, 울 꼬실이는 쟤네들에 대면 어린애네요. 얘는 정말 대한민국 최고 얼짱 동안 대회에 나가야 해요." 딸내미가 늘 주장하는 바다. 그러게...보이지 않고 냄새도 못 맡고 거의 들리지도 않지만 그래도 다른 큰병은 없는 셈이다. 보이지 않으니까 마구 뛸 수는 없어도 지장없이 걷고, 여전히 맛있는 것 찾으며 먹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사양하지 않고, 본래부터 있던 살짝 아토피 외에는 다른 염증도 없다. 물론 오늘도 한두 달 전보다 0.1kg 더 줄은 것 확인했지만 뛰고 걸을 수 없는 노견에게서 빠져나간 근육 탓일 것이요, 최근에 약간 까다로워진 입맛이기는 해도 아예 잃지는 않아 맛난 것 내놓으라 협박도 여전하고, 치매는커녕 한 번 정한 시간이나 습관은 절대로 놓치는 법 없고 삐지면 풀어주지 않는 한 며칠이고 기억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며, 털도 빠지고 검버섯도 피었지만 관절염 하나 없는 모습이 저 나이에 저 정도는 약과일 게고...정말 이렇게 멀끔하게 이 나이까지 와준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화면 안에서 그 동갑네들은 숨을 헐떡이며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는데 울 막둥이 녀석은 십 년 전이나 진배없이 저는 '귀염둥이'요 '막둥이'란다. 연신 코를 풀어대면서 한 손으로는 막둥이를 조물락조물락, 정말 고마워, 절로 이 소리가 자꾸 나왔다. '완소꼬-완전 소중한 꼬실이' 녀석은 보이지 않는 뿌연 눈을 떠 성가신 누나의 사랑의 손길에 마지못해 할짝 대답해 주었다. 그런저런 두런거림을 보태며 화장지 한 통 다 쓰고나니 방송이 끝났다.
거울 앞에 선 아침. 맙소사, 저게 누구야. 얼굴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눈이 탱탱 부어 있네.
이틀 전에 딸애가 그린 울 막둥이 그림 (전지, 아크릴)

내 동생 꼬실이 'ㅂ'
눈에 비닐은 뭐냐면.. 백내장을.. 표현한 것이랄까...
몇년 전부터 백내장이 왔는데
그게 차츰 악화되더니 반 년 정도 전쯤부터 앞을 못 보게 된 불쌍한 내 동생.
지금은 냄새도 못 맡고 귀도 안 들리는데
그렇다고 콧구멍이나 귀까지 다 막으면 그림이 웃겨질 것 같아서 -_-
제일 대표적(?)으로 눈만 가렸다.
까만 전지에 한 것은..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안 들리고 아무 냄새도 없으니까
그냥 깜깜한 어둠 속에 있는 것처럼 표현하고 싶어서.
그냥 전지 한 가운데에 꼬실이만 그려놓으면 너무 썰렁할 것 같아서
자세히 보면.. 여백에 다 까만 아크릴 물감으로 울퉁불퉁하게 칠해놨다.
아무 것도 안 보이고 안 들리고 냄새도 못 맡는 꼬실이로서는
사방이 뭔지 모를 요철처럼 느껴질 테니까...
두 달 전인가, 동호회 처녀가, MBC에서 스페셜 기획하는 게 노견에 관한 것이던데 제보자 찾더라고 연락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었다. "쟤만 출연한다면 모를까 나도 출연하는 건 싫어서" 하고 킥킥 웃는 옆에서 딸내미가 그랬다. "쟨 눈 빼면 노견이라는 생각이 안 들어서 적합하지 않다 할 걸요." 사랑에 눈이 먼 우리는 "맞아, 그래, 정말이야, 쟬 누가 노인네로 보겠니..." 등등 이렇게 왁자하게 웃고 넘겼었다. 이게 바로 그 프로그램인 모양이다.
길지 않은 시간, 화면에 나오는 그 애들은 신기하게도 우리 막둥이와 같은 나이들이다. 그러면 우리 애가 최고령선에 있다는 말이네. 몹시 노쇠하고 병 들고 치매에 종양에 염증에 시달리면서 입맛도 잃고 시력도 잃어 버린 착한 동물들,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서 어쩌면 자기네 본능을 많이 포기하거나 잃어야 했던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최후까지 책임과 사랑을 다하는 성실한 사람들...살아 있다는 것, 서로 존재를 느낀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었고 이윽고 사랑으로 풍요로웠던 기억을 공유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게다.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울 때만 사랑한다는 것은 목숨이건 뭐건 그저 장난감 정도로나 여기는 것이고, 병 들고 늙고 추해져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함께 삶을 걸어가는 동료로,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 부모가 사위어가는 것을 보며 안타깝기는 했어도 그것이 지저분하다 싫다 하지는 않았듯이. 상대가 부모가 아니라서, 사람이 아니라서, 개라서 그 감정이 다르다면 그야말로 '애완견'이었을 뿐 '반려견'으로 안았던 게 아니었겠지.
훌쩍 코를 들이마시는가 했더니 벌떡 일어난 딸애가 화장지를 통째 가져왔고, 그 때부터 우리 둘은 번갈아 뽑아가며 훌쩍 팽 울고 풀고 난리가 났었다. 비스듬히 누워 있는 내 배 위에 또아리를 틀고 자는 막둥이 녀석을 틈틈이 쓰다듬을 때마다 녀석은 방해 받아 귀찮다는 듯 머리를 젓고 살짝 돌아눕곤 했다. "엄니, 울 꼬실이는 쟤네들에 대면 어린애네요. 얘는 정말 대한민국 최고 얼짱 동안 대회에 나가야 해요." 딸내미가 늘 주장하는 바다. 그러게...보이지 않고 냄새도 못 맡고 거의 들리지도 않지만 그래도 다른 큰병은 없는 셈이다. 보이지 않으니까 마구 뛸 수는 없어도 지장없이 걷고, 여전히 맛있는 것 찾으며 먹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사양하지 않고, 본래부터 있던 살짝 아토피 외에는 다른 염증도 없다. 물론 오늘도 한두 달 전보다 0.1kg 더 줄은 것 확인했지만 뛰고 걸을 수 없는 노견에게서 빠져나간 근육 탓일 것이요, 최근에 약간 까다로워진 입맛이기는 해도 아예 잃지는 않아 맛난 것 내놓으라 협박도 여전하고, 치매는커녕 한 번 정한 시간이나 습관은 절대로 놓치는 법 없고 삐지면 풀어주지 않는 한 며칠이고 기억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며, 털도 빠지고 검버섯도 피었지만 관절염 하나 없는 모습이 저 나이에 저 정도는 약과일 게고...정말 이렇게 멀끔하게 이 나이까지 와준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화면 안에서 그 동갑네들은 숨을 헐떡이며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는데 울 막둥이 녀석은 십 년 전이나 진배없이 저는 '귀염둥이'요 '막둥이'란다. 연신 코를 풀어대면서 한 손으로는 막둥이를 조물락조물락, 정말 고마워, 절로 이 소리가 자꾸 나왔다. '완소꼬-완전 소중한 꼬실이' 녀석은 보이지 않는 뿌연 눈을 떠 성가신 누나의 사랑의 손길에 마지못해 할짝 대답해 주었다. 그런저런 두런거림을 보태며 화장지 한 통 다 쓰고나니 방송이 끝났다.
거울 앞에 선 아침. 맙소사, 저게 누구야. 얼굴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눈이 탱탱 부어 있네.
이틀 전에 딸애가 그린 울 막둥이 그림 (전지, 아크릴)

내 동생 꼬실이 'ㅂ'
눈에 비닐은 뭐냐면.. 백내장을.. 표현한 것이랄까...
몇년 전부터 백내장이 왔는데
그게 차츰 악화되더니 반 년 정도 전쯤부터 앞을 못 보게 된 불쌍한 내 동생.
지금은 냄새도 못 맡고 귀도 안 들리는데
그렇다고 콧구멍이나 귀까지 다 막으면 그림이 웃겨질 것 같아서 -_-
제일 대표적(?)으로 눈만 가렸다.
까만 전지에 한 것은..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안 들리고 아무 냄새도 없으니까
그냥 깜깜한 어둠 속에 있는 것처럼 표현하고 싶어서.
그냥 전지 한 가운데에 꼬실이만 그려놓으면 너무 썰렁할 것 같아서
자세히 보면.. 여백에 다 까만 아크릴 물감으로 울퉁불퉁하게 칠해놨다.
아무 것도 안 보이고 안 들리고 냄새도 못 맡는 꼬실이로서는
사방이 뭔지 모를 요철처럼 느껴질 테니까...
# by | 2009/07/04 08:06 | 걔네들 | 트랙백 | 덧글(2)
2009년 05월 04일
그래도 고마워
생전 처음 가는 집에서도 우선 이리저리 탐색부터 하고는 반드시 화장실을 찾아가 용변을 보던 아이, 강아지 때 처음 오줌 똥 가리고부터 단 한 번도 실수를 하지 않았던 녀석. 그 녀석이 눈 안 보이고 귀 어두워지고 냄새를 못 맡으면서 방향을 잡지 못 하니까 화장실을 못 찾는다. 안고 있을 때만, 차에 탔을 때만, 그리고 방에 있을 때만 거기서 쉬야 하고 응가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 참을 뿐이다. 그러니까 즉 방을 나선 거실이 자기 화장실이라고 여기게 된 것이다. 하지만 대견한 건, 남의 집에 가면 무조건 참는다. 낌새를 채고 얼른 화장실에 데려다줘야 한다.
거실 전체를 화장실로 여기는 건 아니다. 화장실 부근에 한한다. 그래서 몇 달 전부터 화장실 문앞에 발매트 대신 오줌 패드를 깔았고, 옆에 있는 문갑 아래 틈새로 오줌이 흘러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해 뱅 돌아가며 패드를 반으로 접어 둘러놨다. 하지만 그렇게 패드를 찾아 누는 일은 참 드물다. 패드에 올라서 그 앞 맨바닥에 싸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거실 바닥이 어둡고 얼룩거리는 모노륨이어서 묻은 게 잘 보이지 않는 터라 아침에 일어나면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고 밤새 어디다 오줌을 눴는지 살펴서 닦아야 한다. 먼저 오줌을 닦아내고, 다음에 물로 닦고, 다시 탈취제 뿌리고. 처음에는 오로지 걸레로만 닦았는데 걸레가 일주일을 못 가고 나달거리며 헤져나갔다. 몇 개를 번갈아 쓴다고는 해도 쉬지 않고 빨아서 짜대야 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드니까 참는 힘도 약해져 조금씩 자주 누는 데 당해낼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우선 흥건한 것은 휴지로 닦아낸다. 휴지도 너무 빨리 써 버려서 할 수 없이 커다란 건물 화장실에서나 쓰는 어마어마하게 큰 두루마리를 사다놓고 쓴다.
오늘 아침에도 발칵 뒤집혔다. 오줌 뿐 아니라 똥도 누어놓은 것이다. 그런데 힘을 주면서 등을 동그랗게 만 채 발을 옮겨디디다 보니까 그만 제똥을 밟은 모양이었다. 똥 묻은 발자국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물론 그렇게 나가서 똥 누고 들어와 다시 내 곁에서 얌전히 자는 중이었다. 당장 어떤 발로 밟았을까 살펴 똥이 굳어 붙은 발바닥을 씻긴 다음 내 이불을 찬찬히 살폈지만 거기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거실에서 방을 찾아 자박자박 걸어다닌 흔적이 점점 엷어진 것으로 보아 발에 묻은 것을 거실바닥에 다 옮겨묻히고 들어온 듯. 우선 거실에 있는 똥덩이들을 집어 치운 다음에 말라붙은 것 찾아내 박박 닦아내느라 이른 아침부터 팔이 다 저렸다. 보통 때도 녀석이 똥을 눌 때면 지켜보고 있다. 행여 밟기라도 할까 봐 휴지 한 줌 들고서 그 옆에 대기한다. 그런데 밤 사이에 이렇게 싸 버리면 대책이 안 선다.
그래도 녀석이 보이지 않고 냄새도 맡지 못 해 다행이다 싶다. 눈이 보이던 1년 전만 해도 길을 걷다 발에 물이 묻기만 해도 탈탈 털어대던 녀석이었다. 한쪽 다리 들고 오줌을 누다가 흘러서 다른 발에 묻으면 질겁을 하며 뒷걸음질 치던 녀석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오줌이 묻건 똥이 묻건 밟고 다니건 모르는 것이다. 내가 귀찮은 게 문제가 아니다. 딱히 눈이 보이지 않아서 뿐 아니라 나이가 들면 괄약근이 약해져 오줌이건 똥이건 참기 힘드는 건 사람이나 짐승이나 마찬가지다. 앞이 보이던 끝무렵에 벌써 그런 조짐이 있어서, 부지런히 화장실로 가다가 더 참지 못 하고 도중에 오줌을 지린 적이 몇 차례 있었다. 그 때 풀 죽어 내 겨드랑이에 얼굴을 묻고 우는 것을 달래느라고 애를 먹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일은 점점 늘어났겠지. 다만 그 후 곧 시력을 잃어서 화장실을 못 찾는 게 도중에 실례를 한 것과 겹쳐졌을 것이다. 만약 여전히 앞을 보고 냄새를 맡을 수 있었음에도 그런 일이 자꾸 벌어지면 얼마나 자존심 상하겠는가. 요즘 들어 더 잠이 많아진 녀석이 내가 휴지니 걸레니 들고 설치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평화롭게 자는 것을 보니 일단 마음이 놓였다.
병을 앓는 일 없어 고마워. 잘 먹어주어 고마워. 딴에는 오줌 똥 가리겠다고 맡기지도 않는 냄새를 맡으려 하며 화장실 찾아 한참 헤매는 그 습관이 고마워. 그리워할 줄 알고 기다릴 줄 알고 반가워할 줄 알고 어리광 부릴 줄 알고 수줍어할 줄도 알고 화를 낼 줄도 알고 삐지기도 하고...여전히 풍부한 감정을 고스란히 보여줘서 고마워. 누나가 장난으로 "아얏" 소리 지르면 비록 귀가 어두워 잘 듣지 못 하는 와중에도 어렴풋이 느끼고는 왕왕 짖어줘서 고마워. 언제나 누나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살아주는 충성심이 고마워. 아무 것도 포기하지 않고 가고 싶은 데 가겠다고 콩콩 박고 울면서도 찾아나서는 고집이 고마워. 밀어주는 밥그릇을 마다하고 혼자서 찾으려는 자존심이 고마워. 무엇보다도 한결같이 옆에 있어줘 고마워. 앞으로도 오래오래 이렇게 있어주어. 하루에 스무 번을 걸레 들고 쫓아다녀도 좋아. 있어만 주는 것으로도 무진장 고마워, 아들!
거실 전체를 화장실로 여기는 건 아니다. 화장실 부근에 한한다. 그래서 몇 달 전부터 화장실 문앞에 발매트 대신 오줌 패드를 깔았고, 옆에 있는 문갑 아래 틈새로 오줌이 흘러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해 뱅 돌아가며 패드를 반으로 접어 둘러놨다. 하지만 그렇게 패드를 찾아 누는 일은 참 드물다. 패드에 올라서 그 앞 맨바닥에 싸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거실 바닥이 어둡고 얼룩거리는 모노륨이어서 묻은 게 잘 보이지 않는 터라 아침에 일어나면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고 밤새 어디다 오줌을 눴는지 살펴서 닦아야 한다. 먼저 오줌을 닦아내고, 다음에 물로 닦고, 다시 탈취제 뿌리고. 처음에는 오로지 걸레로만 닦았는데 걸레가 일주일을 못 가고 나달거리며 헤져나갔다. 몇 개를 번갈아 쓴다고는 해도 쉬지 않고 빨아서 짜대야 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드니까 참는 힘도 약해져 조금씩 자주 누는 데 당해낼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우선 흥건한 것은 휴지로 닦아낸다. 휴지도 너무 빨리 써 버려서 할 수 없이 커다란 건물 화장실에서나 쓰는 어마어마하게 큰 두루마리를 사다놓고 쓴다.
오늘 아침에도 발칵 뒤집혔다. 오줌 뿐 아니라 똥도 누어놓은 것이다. 그런데 힘을 주면서 등을 동그랗게 만 채 발을 옮겨디디다 보니까 그만 제똥을 밟은 모양이었다. 똥 묻은 발자국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물론 그렇게 나가서 똥 누고 들어와 다시 내 곁에서 얌전히 자는 중이었다. 당장 어떤 발로 밟았을까 살펴 똥이 굳어 붙은 발바닥을 씻긴 다음 내 이불을 찬찬히 살폈지만 거기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거실에서 방을 찾아 자박자박 걸어다닌 흔적이 점점 엷어진 것으로 보아 발에 묻은 것을 거실바닥에 다 옮겨묻히고 들어온 듯. 우선 거실에 있는 똥덩이들을 집어 치운 다음에 말라붙은 것 찾아내 박박 닦아내느라 이른 아침부터 팔이 다 저렸다. 보통 때도 녀석이 똥을 눌 때면 지켜보고 있다. 행여 밟기라도 할까 봐 휴지 한 줌 들고서 그 옆에 대기한다. 그런데 밤 사이에 이렇게 싸 버리면 대책이 안 선다.
그래도 녀석이 보이지 않고 냄새도 맡지 못 해 다행이다 싶다. 눈이 보이던 1년 전만 해도 길을 걷다 발에 물이 묻기만 해도 탈탈 털어대던 녀석이었다. 한쪽 다리 들고 오줌을 누다가 흘러서 다른 발에 묻으면 질겁을 하며 뒷걸음질 치던 녀석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오줌이 묻건 똥이 묻건 밟고 다니건 모르는 것이다. 내가 귀찮은 게 문제가 아니다. 딱히 눈이 보이지 않아서 뿐 아니라 나이가 들면 괄약근이 약해져 오줌이건 똥이건 참기 힘드는 건 사람이나 짐승이나 마찬가지다. 앞이 보이던 끝무렵에 벌써 그런 조짐이 있어서, 부지런히 화장실로 가다가 더 참지 못 하고 도중에 오줌을 지린 적이 몇 차례 있었다. 그 때 풀 죽어 내 겨드랑이에 얼굴을 묻고 우는 것을 달래느라고 애를 먹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일은 점점 늘어났겠지. 다만 그 후 곧 시력을 잃어서 화장실을 못 찾는 게 도중에 실례를 한 것과 겹쳐졌을 것이다. 만약 여전히 앞을 보고 냄새를 맡을 수 있었음에도 그런 일이 자꾸 벌어지면 얼마나 자존심 상하겠는가. 요즘 들어 더 잠이 많아진 녀석이 내가 휴지니 걸레니 들고 설치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평화롭게 자는 것을 보니 일단 마음이 놓였다.
병을 앓는 일 없어 고마워. 잘 먹어주어 고마워. 딴에는 오줌 똥 가리겠다고 맡기지도 않는 냄새를 맡으려 하며 화장실 찾아 한참 헤매는 그 습관이 고마워. 그리워할 줄 알고 기다릴 줄 알고 반가워할 줄 알고 어리광 부릴 줄 알고 수줍어할 줄도 알고 화를 낼 줄도 알고 삐지기도 하고...여전히 풍부한 감정을 고스란히 보여줘서 고마워. 누나가 장난으로 "아얏" 소리 지르면 비록 귀가 어두워 잘 듣지 못 하는 와중에도 어렴풋이 느끼고는 왕왕 짖어줘서 고마워. 언제나 누나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살아주는 충성심이 고마워. 아무 것도 포기하지 않고 가고 싶은 데 가겠다고 콩콩 박고 울면서도 찾아나서는 고집이 고마워. 밀어주는 밥그릇을 마다하고 혼자서 찾으려는 자존심이 고마워. 무엇보다도 한결같이 옆에 있어줘 고마워. 앞으로도 오래오래 이렇게 있어주어. 하루에 스무 번을 걸레 들고 쫓아다녀도 좋아. 있어만 주는 것으로도 무진장 고마워, 아들!
# by | 2009/05/04 13:40 | 막둥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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