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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부었네

동호회 아우가 지난 주 어느 밤에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가 강아지에 대한 방송 예고를 봤다며 잊지 않고 보겠노라 매일 염불하듯 되뇌었다. 무언지 몰라도 강아지에 관한 것이라니까 나도 덩달아 봐야지 하고는, 그 시간 가까워지자 일찍 잠드는 새나라의 어른이 깨 있나 확인하기 위해 메세지를 보냈더니, "졸려서 일어나 설거지 했슈" 하는 답. 그렇게 우리가 강아지에 관해 볼 거라고 말하자 딸애는 볼까 말까 잠시 망설였다. 며칠 건들지 못 한 셈틀을 켜고 싶은 것이었다. 그런데 광고 전에 Next 하며 나온 제목이 '노견만세'. 막 머리 감고 나와 드라이어로 말리던 아이 손길이 바빠졌다. "이건 꼭 볼 거예요."

두 달 전인가, 동호회 처녀가, MBC에서 스페셜 기획하는 게 노견에 관한 것이던데 제보자 찾더라고 연락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었다. "쟤만 출연한다면 모를까 나도 출연하는 건 싫어서" 하고 킥킥 웃는 옆에서 딸내미가 그랬다. "쟨 눈 빼면 노견이라는 생각이 안 들어서 적합하지 않다 할 걸요." 사랑에 눈이 먼 우리는 "맞아, 그래, 정말이야, 쟬 누가 노인네로 보겠니..." 등등 이렇게 왁자하게 웃고 넘겼었다. 이게 바로 그 프로그램인 모양이다.

길지 않은 시간, 화면에 나오는 그 애들은 신기하게도 우리 막둥이와 같은 나이들이다. 그러면 우리 애가 최고령선에 있다는 말이네. 몹시 노쇠하고 병 들고 치매에 종양에 염증에 시달리면서 입맛도 잃고 시력도 잃어 버린 착한 동물들,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서 어쩌면 자기네 본능을 많이 포기하거나 잃어야 했던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최후까지 책임과 사랑을 다하는 성실한 사람들...살아 있다는 것, 서로 존재를 느낀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었고 이윽고 사랑으로 풍요로웠던 기억을 공유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게다.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울 때만 사랑한다는 것은 목숨이건 뭐건 그저 장난감 정도로나 여기는 것이고, 병 들고 늙고 추해져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함께 삶을 걸어가는 동료로,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 부모가 사위어가는 것을 보며 안타깝기는 했어도 그것이 지저분하다 싫다 하지는 않았듯이. 상대가 부모가 아니라서, 사람이 아니라서, 개라서 그 감정이 다르다면 그야말로 '애완견'이었을 뿐 '반려견'으로 안았던 게 아니었겠지.

훌쩍 코를 들이마시는가 했더니 벌떡 일어난 딸애가 화장지를 통째 가져왔고, 그 때부터 우리 둘은 번갈아 뽑아가며 훌쩍 팽 울고 풀고 난리가 났었다. 비스듬히 누워 있는 내 배 위에 또아리를 틀고 자는 막둥이 녀석을 틈틈이 쓰다듬을 때마다 녀석은 방해 받아 귀찮다는 듯 머리를 젓고 살짝 돌아눕곤 했다. "엄니, 울 꼬실이는 쟤네들에 대면 어린애네요. 얘는 정말 대한민국 최고 얼짱 동안 대회에 나가야 해요." 딸내미가 늘 주장하는 바다. 그러게...보이지 않고 냄새도 못 맡고 거의 들리지도 않지만 그래도 다른 큰병은 없는 셈이다. 보이지 않으니까 마구 뛸 수는 없어도 지장없이 걷고, 여전히 맛있는 것 찾으며 먹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사양하지 않고, 본래부터 있던 살짝 아토피 외에는 다른 염증도 없다. 물론 오늘도 한두 달 전보다 0.1kg 더 줄은 것 확인했지만 뛰고 걸을 수 없는 노견에게서 빠져나간 근육 탓일 것이요, 최근에 약간 까다로워진 입맛이기는 해도 아예 잃지는 않아 맛난 것 내놓으라 협박도 여전하고, 치매는커녕 한 번 정한 시간이나 습관은 절대로 놓치는 법 없고 삐지면 풀어주지 않는 한 며칠이고 기억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며, 털도 빠지고 검버섯도 피었지만 관절염 하나 없는 모습이 저 나이에 저 정도는 약과일 게고...정말 이렇게 멀끔하게 이 나이까지 와준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화면 안에서 그 동갑네들은 숨을 헐떡이며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는데 울 막둥이 녀석은 십 년 전이나 진배없이 저는 '귀염둥이'요 '막둥이'란다. 연신 코를 풀어대면서 한 손으로는 막둥이를 조물락조물락, 정말 고마워, 절로 이 소리가 자꾸 나왔다. '완소꼬-완전 소중한 꼬실이' 녀석은 보이지 않는 뿌연 눈을 떠 성가신 누나의 사랑의 손길에 마지못해 할짝 대답해 주었다. 그런저런 두런거림을 보태며 화장지 한 통 다 쓰고나니 방송이 끝났다.

거울 앞에 선 아침. 맙소사, 저게 누구야. 얼굴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눈이 탱탱 부어 있네.


이틀 전에 딸애가 그린 울 막둥이 그림 (전지, 아크릴)

내 동생 꼬실이 'ㅂ'
눈에 비닐은 뭐냐면.. 백내장을.. 표현한 것이랄까...
몇년 전부터 백내장이 왔는데
그게 차츰 악화되더니 반 년 정도 전쯤부터 앞을 못 보게 된 불쌍한 내 동생.
지금은 냄새도 못 맡고 귀도 안 들리는데
그렇다고 콧구멍이나 귀까지 다 막으면 그림이 웃겨질 것 같아서 -_-
제일 대표적(?)으로 눈만 가렸다.
까만 전지에 한 것은..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안 들리고 아무 냄새도 없으니까
그냥 깜깜한 어둠 속에 있는 것처럼 표현하고 싶어서.
그냥 전지 한 가운데에 꼬실이만 그려놓으면 너무 썰렁할 것 같아서
자세히 보면.. 여백에 다 까만 아크릴 물감으로 울퉁불퉁하게 칠해놨다.
아무 것도 안 보이고 안 들리고 냄새도 못 맡는 꼬실이로서는
사방이 뭔지 모를 요철처럼 느껴질 테니까...

by 暗雲姬 | 2009/07/04 08:06 | 걔네들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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